문화

국보·보물 품은 이건희 컬렉션, 런던서 마지막 순회전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유산이 이번에는 영국 런던 관람객을 만난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한국 미술의 대표작들이 영국박물관 무대에 올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한국 창의성의 흐름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10월 1일부터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순회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이건희 회장 유족의 대규모 국가 기증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국내에서 큰 관심을 모았던 기증품 전시가 해외 순회전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번 런던 전시는 미국 워싱턴DC와 시카고에 이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국외순회전이다. 앞서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가 열렸고, 2026년 3월 시카고박물관에서는 ‘한국의 국보: 한국미술 2000년’이 개최됐다. 런던 전시는 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리다.

 

전시 규모도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79건 164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5건, 영국박물관 소장품 6건 등 모두 100건이 출품된다. 특히 국보 10건 27점과 보물 13건 23점이 포함됐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도 선보인다.

 

전시장은 영국박물관의 상징적 공간인 중앙 중정에 면한 전시실에 꾸며진다. 관람객은 먼저 ‘타임 터널’을 지나며 한국 미술의 시간을 따라 걷게 된다. 시대별 주요 유물을 따라 이동하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네 개의 전시 공간이 차례로 펼쳐진다.

 

1부 ‘부와 권력’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고유물과 삼국시대 불교미술품을 통해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다룬다. 권력의 상징으로 제작된 청동기와 금속공예, 불교문화의 확산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고대 한국 사회의 구조와 세계관을 드러낸다.

 

2부 ‘지혜와 아름다움’에서는 고려시대의 미감과 기술력을 조명한다. 고려 불화와 사경, 청자, 금속공예품 등이 중심이다. 섬세한 장식과 정교한 제작 기술을 통해 고려 예술이 지닌 세련미와 정신성을 함께 보여준다.

 

3부 ‘배움과 즐거움’은 조선시대 문인 문화와 회화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 유학자의 학문과 수양, 일상 속 미의식을 살펴보는 동시에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조선 후기 회화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조선 미술이 자연과 인간, 학문과 취미를 어떻게 담아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마지막 4부 ‘개성과 사회’는 근현대 한국미술을 다룬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의 작품을 통해 개인의 시선과 공동체의 기억,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살핀다. 전통미술 중심의 전시를 넘어 현대 한국미술까지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국박물관과 한국미술의 인연도 오래됐다. 영국박물관은 1984년 특별전 ‘한국미술 오천년’을 개최한 이후 한국미술 전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2000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대여해 한국실을 운영하며 한국 문화유산을 소개해왔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미국 워싱턴DC와 시카고에서 큰 성공을 거둔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순회전이 영국에서는 더 많은 국보와 보물이 포함된 옹골찬 구성으로 새로운 한국의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컬처의 뿌리를 찾아 많은 유럽 관람객이 방문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고대 청동기부터 고려 공예, 조선 회화, 근현대 미술까지 한국 미술 2000년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자리다. 이건희 기증품이 개인의 수집을 넘어 공공의 문화유산으로 확장되고, 다시 세계 관람객과 만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한다.

 

고려아연, 8370억원 손배소 승소…영풍은 항소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 측이 제기한 약 8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고려아연 이사들이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과정에서 법령과 정관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22일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한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약 8370억원의 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사들의 경영상 판단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만한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취득 결정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사는 회사 경영에 관한 재량권을 가지며,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법원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결정이 이 같은 경영 판단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봤다. 당시 고려아연 이사들은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사들이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와 제한을 준수하고 외부 법률 자문 등을 검토했으며, 일정 수준의 할증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상법이나 회사 정관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규정된 배당가능이익과 관련해서도 영풍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당가능이익은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있는 한도를 의미하며,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도 해당 한도 내에서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이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총규모를 제한하는 것이지, 취득 자금이 어떤 회계 항목에서 마련됐는지를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자기주식 취득에 특정 재원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회사 정관에 중간배당을 할 때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재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다는 점도 쟁점이 됐다. 다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을 자기주식 취득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유추해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따라서 해당 재원을 자기주식 매입에 활용한 것이 정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이번 소송은 영풍이 2024년 11월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했다. 영풍은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다. 소송에서 주주 측이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돌아간다.영풍이 문제 삼은 것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였다. 영풍 측은 주당 약 56만원 수준이던 고려아연 주식을 89만원에 공개매수해 총 204만30주의 자기주식을 취득한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한 만큼 회사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결정한 이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 양측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은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 등을 검토한 이사회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풍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고려아연은 이날 별도로 진행된 한화 지분 매각 관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고려아연은 두 건의 판결을 통해 자기주식 공개매수와 한화 지분 매각을 둘러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영풍과 MBK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소송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송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양측은 상급심에서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위법성과 고려아연 이사회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다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손해배상 분쟁은 항소심에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이번 판결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사회가 내린 주요 의사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원은 자기주식 취득 결정 당시 이사들이 관련 법령과 절차를 검토하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영풍·MBK 측이 항소를 예고한 만큼,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적법성과 이사들의 경영 판단에 대한 책임 범위는 상급심에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