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아

대법관 공백 6개월째, 사법부 독립성 논란 격화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절차적 완결성 부족을 이유로 임명동의안 제출을 거부하며 제청안을 반려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을 공식화했다. 이는 대법원장이 청와대와의 물밑 조율 없이 서면으로 제청을 강행한 지 열흘 만에 나온 결과로, 행정부와 사법부 수장이 대법관 인선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갈등의 뿌리는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는 현 정부의 색깔을 반영할 수 있는 진보 성향의 여성 후보인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를 선호했으나, 대법원은 사법부 내부의 중립성과 배우자의 헌법재판관 재임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양측은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조 대법원장이 관례인 대통령 대면 보고를 생략한 채 손 부장판사를 단독 제청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청와대의 반려 조치로 인해 공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왔지만, 향후 절차를 두고 법조계의 해석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권과 청와대는 기존에 추천된 나머지 후보 3명 중에서 다시 제청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법부 내부에서는 이미 제청 절차가 끝난 만큼 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약 기존 후보군 내에서 재제청을 강요받는다면 이는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인 제청권을 무력화하고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후보를 고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선 과정에서 거론된 후보들의 개인적 사정도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청와대가 밀었던 김민기 판사는 배우자가 현직 헌법재판관이라는 점이 대법원 판결에 대한 헌재의 심사권과 맞물려 공정성 논란을 낳았다. 대법원이 고려했던 다른 후보들 역시 내란전담재판부 재임이나 선관위원 경력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작용하면서 양측의 선택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였다. 결국 이러한 인물난과 성향 차이가 헌정 사상 유례없는 제청 반려라는 파국을 불러왔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 후보 중 한 명을 다시 올릴지, 아니면 추천위를 새로 꾸려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지에 따라 사법 정국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법원장이 추천위 재구성을 강행할 경우 행정부와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며, 이는 사법부 독립을 둘러싼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청와대의 의중을 수용한다면 대법원장의 리더십은 사법부 내부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대법관 공백 사태가 반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인해 대법원의 재판 기능 마비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미궁에 빠진 사이 또 다른 대법관인 이흥구 대법관의 퇴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이 대법관의 후임인 김성수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양측이 합의하여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으나, 한 명의 공석이 장기화되는 것만으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운영과 사건 처리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고려아연, 8370억원 손배소 승소…영풍은 항소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 측이 제기한 약 8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고려아연 이사들이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과정에서 법령과 정관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22일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한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약 8370억원의 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사들의 경영상 판단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만한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취득 결정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사는 회사 경영에 관한 재량권을 가지며,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법원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결정이 이 같은 경영 판단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봤다. 당시 고려아연 이사들은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사들이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와 제한을 준수하고 외부 법률 자문 등을 검토했으며, 일정 수준의 할증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상법이나 회사 정관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규정된 배당가능이익과 관련해서도 영풍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당가능이익은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있는 한도를 의미하며,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도 해당 한도 내에서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이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총규모를 제한하는 것이지, 취득 자금이 어떤 회계 항목에서 마련됐는지를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자기주식 취득에 특정 재원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회사 정관에 중간배당을 할 때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재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다는 점도 쟁점이 됐다. 다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을 자기주식 취득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유추해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따라서 해당 재원을 자기주식 매입에 활용한 것이 정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이번 소송은 영풍이 2024년 11월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했다. 영풍은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다. 소송에서 주주 측이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돌아간다.영풍이 문제 삼은 것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였다. 영풍 측은 주당 약 56만원 수준이던 고려아연 주식을 89만원에 공개매수해 총 204만30주의 자기주식을 취득한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한 만큼 회사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결정한 이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 양측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은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 등을 검토한 이사회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풍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고려아연은 이날 별도로 진행된 한화 지분 매각 관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고려아연은 두 건의 판결을 통해 자기주식 공개매수와 한화 지분 매각을 둘러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영풍과 MBK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소송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송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양측은 상급심에서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위법성과 고려아연 이사회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다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손해배상 분쟁은 항소심에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이번 판결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사회가 내린 주요 의사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원은 자기주식 취득 결정 당시 이사들이 관련 법령과 절차를 검토하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영풍·MBK 측이 항소를 예고한 만큼,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적법성과 이사들의 경영 판단에 대한 책임 범위는 상급심에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