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자신 지우려던 점, 세계를 덮다…쿠사마 별세

 자신을 에워싼 환각의 공포를 무한한 점으로 승화시켰던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가 9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쿠사마 스튜디오는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그녀가 세상을 떠났음을 공식 발표하며, 마지막 날까지도 영원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꽃과 점이 자신을 덮치는 환각에 시달렸던 소녀는 그 두려움을 회피하는 대신 캔버스에 옮겼고, 그 반복적인 행위는 훗날 '자기소멸'이라는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자리 잡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보수적인 일본 화단의 벽을 넘어 1958년 뉴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거대한 화면을 미세한 망으로 채우는 '인피니티 네트'를 선보이며 전위미술의 중심에 섰다. 여성과 아시아인이라는 이중의 제약 속에서도 누드 퍼포먼스와 반전 해프닝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초청받지 않은 상태에서 거울 구 1,500개를 깔아놓고 판매하는 도발적인 설치 미술 '나르시스 가든'을 선보여 세계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70년대 일본으로 돌아온 쿠사마는 스스로 정신병원 입원을 선택하며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병원은 그녀에게 단절의 공간이 아닌, 창작에만 몰입할 수 있는 안전한 안식처가 되었다. 병원과 인근 스튜디오를 오가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탄생한 '노란 호박'과 '인피니티 미러룸'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며 화려하게 복귀한 그녀는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로 군림하게 되었다.

 

쿠사마의 작품은 스마트폰과 SNS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관람객의 모습이 무한히 증식되는 거울 방은 가장 매력적인 촬영 명소가 되었고,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는 그녀의 전시를 보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강박에서 시작된 '자기소멸'의 철학이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맞닿으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인기는 미술 시장에서도 반영되어, 매년 수억 달러 규모의 거래액을 기록하며 아시아 작가 중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다.

 


한국 미술 시장과의 인연도 각별했다. 검은 점이 박힌 노란 호박은 국내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지난 3월에는 대형 회화 작품이 국내 경매 사상 쿠사마 작품 중 최고가인 104억 5,000만 원에 낙찰되며 그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2013년 대구와 2014년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은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쿠사마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호박 조각은 국내 곳곳의 랜드마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가 되었다.

 

평생을 바쳐 자신을 지우려 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그녀를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점 하나에서 시작된 그녀의 무한한 세계는 이제 작가라는 물리적 실체를 떠나 영원히 증식하는 예술적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쿠사마 스튜디오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예술을 통해 미래를 향한 희망을 전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 예술가의 치열했던 삶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가 세상에 뿌린 무수한 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배 위까지 올라갔다”…예인선 실종자 새 정황

부산 오륙도 앞바다에서 전복된 뒤 침몰한 예인선 티엔에스캐처호에서 사고 당시 인도네시아 선원 외에도 2명이 추가로 배 밖으로 빠져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은 구조되지 못한 채 강한 조류에 휩쓸려간 것으로 파악됐다. 7일 국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해경은 사고 당시 현장을 지나던 컨테이너선의 목격자 진술과 CCTV 영상을 분석해 티엔에스캐처호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A씨 외에 2명의 선원이 추가로 탈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이 가운데 한 명은 사고 당시 선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던 2등기관사로 추정되고 있다. 당초 알려진 사고 상황과 달리 2등기관사를 포함한 2명이 배에서 탈출했던 정황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사고 직후 A씨는 인근 상선에 의해 구조됐다. 그러나 수면 위로 올라온 나머지 2명은 구명환을 붙잡기도 전에 빠르게 이동하는 조류에 휩쓸려 내려갔다.당시 사고 해역의 조류는 3노트 이상으로 매우 빨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탈출한 선원들의 표류가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었던 셈이다.이 과정에서 사고 초기 CCTV 분석이 늦어진 것을 두고 수색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CCTV 영상은 사고 당시 선원들의 움직임과 표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기 때문이다.인도네시아 선원 A씨는 지난 주말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존 증언을 바꿨다. 그는 당시 2등기관사가 자신과 함께 배에서 탈출했고, 뒤집힌 배 위에 올라갔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실종자 가족들은 A씨의 증언을 들은 뒤 해경에 CCTV 영상을 확인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경은 수사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2등기관사의 가족은 해경의 CCTV 확인이 늦어진 점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가족 측은 장관과 시장이 실종자 가족 대기실을 찾은 뒤에야 해경이 CCTV를 확인했다며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2등기관사의 가족은 “초기에 CCTV를 분석해 표류 방향을 제대로 짚었다면 수색 방향이라도 정확하게 잡았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고 직후 확보된 영상 분석이 신속하게 이뤄졌다면 수색 과정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는 취지다.이에 대해 해경은 CCTV 영상 자체의 판독이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원거리에서 촬영된 영상이어서 화면 속 선원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작았고, 이 때문에 정확한 움직임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설명이다.해경 관계자는 사고 당시 해역의 상황도 CCTV 분석을 늦춘 이유로 들었다. 당시 조류가 3노트 이상으로 매우 빠른 데다 파도까지 높아 영상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이번 확인으로 사고 당시 티엔에스캐처호에서 탈출한 선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2명 더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이 가운데 한 명이 실종된 2등기관사로 추정되면서 사고 직후 선원들의 탈출 상황과 이후 표류 경로를 다시 확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실종자 가족들은 초기 CCTV 분석이 늦어진 점을 지적하며 수색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해경은 영상의 판독이 어려웠고 사고 해역의 빠른 조류와 높은 파도 때문에 분석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