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모아

1기 대장암도 척척…혈액 속 DNA가 암세포 추적

 국내 의료진이 단 한 번의 채혈만으로 대장암 환자를 90% 이상의 확률로 찾아낼 수 있는 혁신적인 진단 기술을 선보였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은 GC지놈과 공동 연구를 통해 혈액 속에 떠다니는 DNA 조각과 인공지능 분석 기법을 결합한 새로운 선별 검사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대변 채취나 장정결제 복용 등 기존 대장암 검진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환자들의 극심한 번거로움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구의 핵심은 세포가 사멸하면서 혈액으로 방출하는 '세포유리DNA(cfDNA)'에 있다.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는 정상 세포의 것과 비교했을 때 조각의 길이나 절단된 위치, 말단 구조 등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연구팀은 이러한 변별점을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술로 파악한 뒤, 방대한 데이터를 인공지능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켜 암 존재 여부를 판별하도록 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유전체 정보의 패턴을 AI가 정밀하게 잡아낸 결과다.

 


실제 환자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검증 결과는 놀라웠다.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에 달했으며, 정상인을 음성으로 판별하는 특이도 역시 94.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조기 발견 성능이다.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1기 대장암에서 84.2%의 민감도를 기록했고, 내시경 절제술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초기 단계 암은 90%의 확률로 검출해냈다. 이는 혈액검사가 조기 선별 도구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입증한 수치다.

 

암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진행성 대장용종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용종 검출 민감도는 58.3%로 암 자체보다는 낮았으나, 기존 국가 검진에서 활용되는 분변잠혈검사의 용종 검출률이 25~40% 수준임을 고려하면 진일보한 성과다. 피 한 방울로 암뿐만 아니라 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고위험군까지 선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장암 예방을 위한 1차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주요 암종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검사 전날 밤새 장을 비워야 하는 대장내시경의 고통과 직접 대변을 채취해야 하는 분변검사의 불편함이 검진 참여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었다. 이번에 개발된 혈액검사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 도입된다면, 다른 건강검진을 위해 채혈하는 과정에서 대장암 위험도까지 동시에 확인할 수 있어 검진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당장 대장내시경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혈액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더라도 정확한 발병 위치 확인과 조직 검사, 그리고 용종 제거를 위해서는 결국 내시경 검사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대장암 검진을 꺼리는 사람들을 1차적으로 걸러내 정밀 검사로 유도하는 강력한 선별 도구로서의 가치를 입증한 것이며, 향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 연구를 통해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고려아연, 8370억원 손배소 승소…영풍은 항소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 측이 제기한 약 8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고려아연 이사들이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과정에서 법령과 정관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22일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한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약 8370억원의 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사들의 경영상 판단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만한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취득 결정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사는 회사 경영에 관한 재량권을 가지며,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법원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결정이 이 같은 경영 판단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봤다. 당시 고려아연 이사들은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사들이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와 제한을 준수하고 외부 법률 자문 등을 검토했으며, 일정 수준의 할증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상법이나 회사 정관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규정된 배당가능이익과 관련해서도 영풍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당가능이익은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있는 한도를 의미하며,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도 해당 한도 내에서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이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총규모를 제한하는 것이지, 취득 자금이 어떤 회계 항목에서 마련됐는지를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자기주식 취득에 특정 재원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회사 정관에 중간배당을 할 때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재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다는 점도 쟁점이 됐다. 다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을 자기주식 취득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유추해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따라서 해당 재원을 자기주식 매입에 활용한 것이 정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이번 소송은 영풍이 2024년 11월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했다. 영풍은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다. 소송에서 주주 측이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돌아간다.영풍이 문제 삼은 것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였다. 영풍 측은 주당 약 56만원 수준이던 고려아연 주식을 89만원에 공개매수해 총 204만30주의 자기주식을 취득한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한 만큼 회사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결정한 이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 양측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은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 등을 검토한 이사회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풍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고려아연은 이날 별도로 진행된 한화 지분 매각 관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고려아연은 두 건의 판결을 통해 자기주식 공개매수와 한화 지분 매각을 둘러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영풍과 MBK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소송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송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양측은 상급심에서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위법성과 고려아연 이사회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다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손해배상 분쟁은 항소심에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이번 판결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사회가 내린 주요 의사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원은 자기주식 취득 결정 당시 이사들이 관련 법령과 절차를 검토하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영풍·MBK 측이 항소를 예고한 만큼,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적법성과 이사들의 경영 판단에 대한 책임 범위는 상급심에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