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캔버스 뚫고 나온 사과, 윤병락의 붉은 유혹

 화면 속 붉은 사과가 금세라도 전시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듯한 생동감을 뿜어낸다. 한국 사실주의 회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사과 작가' 윤병락의 개인전 'The Season of Time'이 25일 서울 청담동 보자르갤러리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사과라는 소재를 통해 시간의 축적과 공간의 확장을 탐구한 신작들을 대거 선보인다. 단순히 대상을 똑같이 베끼는 극사실적 재현을 넘어, 회화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실험이 돋보이는 자리다.

 

윤병락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정형화된 사각형 틀을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과나 상자의 외곽선을 따라 직접 나무 화판을 깎아 만드는 '변형 화판'을 사용한다. 여기에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부감법을 적용해 평면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과 상자가 실제 공간에 놓여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캔버스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 사과의 입체감이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은 벽에 걸린 그림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오브제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 작업을 넘어 FRP 소재로 제작한 사과 입체 작품도 새롭게 공개되었다. 이는 캔버스 안의 사과가 물리적 벽을 넘어 전시장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평면에서 구현했던 극사실적 묘사를 입체 조형물로 옮겨오며 관람객의 시각적 경험을 다각화했다. 벽면과 바닥을 아우르는 사과들의 배치는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과수원이나 수확의 현장으로 변모시키며 예술적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196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윤병락은 구상회화의 전통이 깊은 대구에서 수학하며 탄탄한 묘사력을 다졌다. 대학 시절 이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등을 거치며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고향의 기억이 서린 사과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에게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유년의 그리움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수십 년간 같은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공간감을 창출해내는 그의 끈기는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하게 했다.

 


전시 제목인 'The Season of Time'은 한 알의 사과가 붉게 익기까지 견뎌낸 햇빛과 바람, 비의 시간을 의미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행위를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의 흐름에 비유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인고의 과정은 작가가 화판을 깎고 세밀한 붓질을 반복하는 예술적 수행과 닮아 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탐스러운 결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숭고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내달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윤병락이 구축한 사과의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평면과 입체, 가상과 실제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그의 사과들은 현대인들에게 수확의 기쁨과 시각적 유희를 동시에 선사한다. 가장 익숙한 소재로 가장 낯선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거장의 손길은, 올가을 청담동을 찾는 미술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붉은색의 잔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北 또 ‘조선’ 강조…日 언론에 호칭 요청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북한 선수단의 호칭 문제가 일본 언론 보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산하 체육단체들은 일본 매체들을 상대로 ‘북조선’이라는 표현 대신 북한의 공식 국호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쓰이는 영문 약칭을 사용해 달라고 요구했다.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재일본조선인체육연합회와 조선선수단 아이치동포환영위원회는 지난 12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총련 메이코지부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교도통신, NHK, 주니치신문, 주쿄TV 등 일본 언론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했다.회견의 핵심은 명칭이었다. 조총련 측 단체들은 아시안게임 보도에서 북한을 ‘북조선’으로 부르지 말고,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영문 공식 명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약칭 ‘DPRK’를 써 달라고 밝혔다. 일본 내에서 관행적으로 쓰이는 표현보다 국제 스포츠 현장의 표기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북한올림픽위원회 연락관인 송수일 재일본조선인체육연합회 사무국장은 가라데를 비롯한 국제 경기에서 북한 대표팀이 ‘DPRK’나 ‘DPR Korea’로 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회 준비 과정에서도 조직위원회가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며 일본 언론 역시 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조총련 측은 단순한 표기 문제를 넘어 보도 태도 전반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경기의 승패를 정치적 갈등이나 외교적 대립과 지나치게 연결하면 선수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민족적 차별, 혐오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극적인 제목이나 선입견을 강화하는 표현을 삼가고, 선수들을 정치적 상징이 아닌 체육인으로 다뤄 달라고 요청했다.또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공격 대상이 되지 않도록 언론이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사무국장은 정확한 국호 사용이 선수들의 존엄을 지키는 출발점이라며, 선수들이 다른 국가 선수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밝혔다.북한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자국 호칭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북한’은 물론 비교적 중립적으로 여겨졌던 ‘북측’이라는 표현에도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 수원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도 북한 여자축구팀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리유일 감독이 ‘북한’이라는 표현에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우승 뒤 기자회견에서는 ‘북측’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강하게 항의했고, 회견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북한은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축구, 역도, 레슬링 등 14개 종목 선수 107명을 보냈다. 임원과 지원 인력을 포함하면 선수단 규모는 180여명에 이른다. 북한이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요구가 일본 언론의 실제 보도 관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다만 북한 선수단의 경기력뿐 아니라 호칭과 보도 방식까지 대회 기간 논란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