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가운 실망을 환희로, SAC 페스티벌 악단의 반전

 클래식 음악의 정점에 선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가 18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지휘자 이승원과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빚어낼 선율에 숨을 죽였다. 하지만 공연 초반의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무거웠다. 전 세계 유수의 악단에서 활동하는 단원들이 모인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특성상, 물리적인 연습 시간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한계가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첫 곡으로 연주된 라벨의 '라 발스'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시험하는 척도와 같았다. 기술적인 실수는 눈에 띄지 않았으나, 곡이 지닌 특유의 색채감과 리듬의 변주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지휘자 이승원과 단원들은 곡의 해석보다는 완주 그 자체에 매몰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음악제의 시작을 알리는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객석을 짓눌렀고, 연주가 끝난 뒤 쏟아진 박수 소리에는 관객들의 차가운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이어진 무대에는 지난해 쇼팽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피아니스트 케빈 첸이 등장했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택한 그는 독주 구간에서 압도적인 기교와 섬세한 리듬감을 뽐내며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협주곡의 핵심인 오케스트라와의 유기적인 호흡에서는 여전히 엇박자가 감지되었다. 개별 연주자의 뛰어난 기량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연습량의 공백이 드러나며, 공연장 내 냉랭한 기류를 완전히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반전은 2부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1시간에 달하는 대작이자 오케스트라의 협동심이 필수적인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연주되자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다른 악단으로 탈바꿈했다. 휴식 시간 동안 전열을 가다듬은 듯, 단원들은 라벨의 복잡한 화성과 리듬을 정교하게 엮어내기 시작했다. 지휘자 이승원은 곡의 서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했고, 오케스트라는 이에 화답하듯 입체적인 음향을 쏟아내며 관객들을 신화 속 풍경으로 안내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곡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력을 더했다. 1부의 생동감 넘치는 춤곡으로 시작해 2부의 광활한 공간감을 거쳐, 마지막 3부의 장엄한 합주에 이르기까지 오케스트라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순간 이승원의 지휘봉이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을 때, 객석에서는 1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환호와 함께 10분간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초반의 우려를 확신으로 바꾼 오케스트라의 끈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는 이번 개막 공연을 기점으로 오는 23일까지 클래식의 향연을 이어간다. 19일 케빈 첸의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압두라이모프의 무대, 그리고 한국 신화를 접목한 바로크 음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축제의 대미는 23일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로 꾸며지는 폐막 공연이 장식할 예정이다. 개막 공연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한 반전은 남은 일정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리며 축제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히틀러 이어 전두환 소환, 김민석-이진숙 '독설 전쟁'

 정치권의 언어 폭주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26일 안동에서 열린 당 회의를 통해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을 겨냥한 고강도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이 의원을 '여자 히틀러'라고 지칭해 모욕 혐의로 고소당한 김 대표는 이번에는 '여자 전두환'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꺼내 들며 공세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상대 측의 법적 대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을 소환해 정치적 낙인찍기를 이어가는 형국이다.김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이 의원이 자신을 고소한 행위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특정 호칭에 대해 시비를 거는 태도를 비꼬며, 오히려 이 의원이 선호하는 명칭으로 통일해 부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롱 섞인 제안을 던졌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을 소요 사태로 규정하는 듯한 이 의원의 과거 행보를 전두환 씨의 내란 행위와 결부시키며,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의원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대표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최장 1년까지 의원 자격을 정지할 수 있는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는 단순한 말싸움을 넘어 입법권을 동원해 상대 진영 의원의 활동을 제약하겠다는 초강수다. 여야 관계가 대화와 타협이 아닌 법적 처벌과 자격 박탈을 논하는 극단적인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한병도 원내대표 역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통과된 이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힘을 보탰다.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의결된 이번 결의안이 역사 왜곡에 대한 엄중한 경고임을 분명히 했다. 여전히 5·18 정신이 정쟁의 도구로 소비되는 현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듯한 여권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이달 중순 열린 역사 재조명 포럼이었다. 당시 이 의원이 주도한 행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취지의 발언들이 나오자 야권은 이를 헌법 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표현의 자유와 학술적 논의를 주장하며 김 대표를 모욕죄로 고소하는 등 법적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정치적 논쟁이 사법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양측의 감정 골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졌다.현재 정치권은 민생 현안보다 상대 진영을 향한 극단적인 비유와 고소·고발전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역사적 비극을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국회의 품격은 추락하고 국민적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김 대표의 '여자 전두환' 발언과 이 의원의 고소전이 향후 국회 운영에 어떤 파행을 불러올지 우려 섞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