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로마 채석장서 빚은 샴페인 세계지도

 프랑스 랭스의 뜨거운 지열을 피해 지하 30m 아래로 내려가면, 19세기 한 여성 경영인이 꿈꿨던 거대한 야망의 지도가 펼쳐진다. 샴페인 하우스 '뽀므리'의 역사는 1858년 남편을 잃고 홀로 사업을 맡게 된 마담 뽀므리의 과감한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고대 로마 시대의 폐채석장들을 사들여 이를 하나의 거대한 갱도로 연결하는 대역사를 단행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이 공사는 오늘날 총연장 18km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 도시를 탄생시키며 샴페인 역사에 획을 그었다.

 

이 지하 도시의 독특한 점은 갱도마다 세계 주요 도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마담 뽀므리가 자신의 샴페인을 수출하며 정복해 나갔던 도시들의 명칭은 어두운 갱도 안에서 빛나는 훈장과도 같다. 방문객들은 백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 습도 98%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19세기 여장부가 그려 넣은 세계지도를 따라 걷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저장고를 넘어, 한 기업가가 품었던 글로벌 비즈니스의 원대한 포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공간이다.

 


갱도의 백악 벽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한다. 1882년 조각가 귀스타브 나블레가 무른 석회암 벽을 직접 파내어 완성한 대형 부조들은 샴페인을 즐기는 당대의 연회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손톱으로 긁으면 부스러질 만큼 부드러운 백악의 특성을 활용해 액자 틀의 장식과 커튼의 주름까지 정교하게 묘사한 이 작품들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갱도의 음습한 공기 속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남긴 이 흔적들은 샴페인이 지닌 문화적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뽀므리의 까브가 특별한 이유는 고전 유산에 머물지 않고 현대미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 있다. 2002년부터 매년 진행해온 '익스피리언스 뽀므리' 프로젝트는 수천만 병의 술이 익어가는 창고를 첨단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세기의 고전 부조 아래 설치된 현대적인 미술 패널과 조형물들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다. 술 향기가 진동하는 지하 갱도에서 마주하는 현대미술은 관람객들에게 시공간을 잊게 하는 기묘한 미적 체험을 선사한다.

 


지하의 서늘함이 예술과 술을 보듬는 동안, 지상에서는 정반대의 자연 현상이 포도를 키워낸다. 까브 바로 위쪽에 위치한 25헥타르 규모의 포도밭 '클로 퐁파두르'는 40도가 넘는 여름철 폭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과실을 익힌다. 연중 10도를 유지하는 지하의 정적인 시간과 지상의 역동적인 계절감이 교차하며 뽀므리만의 독보적인 풍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환경은 샹파뉴 지역이 왜 세계 최고의 와인 성지로 불리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마담 뽀므리의 성공 뒤에는 뵈브 클리코라는 또 다른 위대한 여성 선배의 발자취가 있었다. 1805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하우스를 물려받은 마담 클리코는 샴페인의 투명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공정을 발명하며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뵈브 클리코가 현대적인 세련미와 매끄러운 투어 동선으로 명성을 떨친다면, 뽀므리는 거친 백악 벽면의 질감과 현대 예술의 파격적인 결합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두 미망인이 일궈낸 지하의 제국은 지상의 폭염 속에서도 변치 않는 서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홍명보 후임은 모레노…대표팀 첫 스페인 사령탑

스페인 출신 지도자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의 하반기 일정을 책임질 임시 사령탑으로 낙점됐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흔들린 대표팀은 처음으로 스페인 국적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분위기 전환에 나선다.대한축구협회는 1일 충남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이사회를 열고 모레노 감독을 비롯한 A대표팀 임시 코칭스태프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모레노 감독의 계약 기간은 11월 27일까지다. 이 기간 그는 9월과 10월, 11월에 열리는 A매치 총 6경기를 지휘한다.이번 인선은 홍명보 전 감독이 2026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물러나면서 시작됐다. 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축구협회는 사상 처음으로 공개채용 절차를 도입했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와 온라인 면접, 대면 협의가 진행됐고, 최종 후보군에는 모레노 감독과 도메네크 토렌트, 헤수스 카사스 등이 포함됐다.협회는 최종적으로 모레노 감독의 분석 능력과 전술적 유연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데이터 기반의 경기 준비, 상대에 따른 전술 변화, 짧은 기간 안에 팀 구조를 정비할 수 있는 능력이 강점으로 평가됐다. 한국 축구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이해도 역시 선임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모레노 감독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핵심 참모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에서 엔리케 감독을 보좌했다. 이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스페인 대표팀 코치로 일했고, 엔리케 감독이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운 2019년에는 스페인 대표팀 감독 대행을 맡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예선을 지휘했다.클럽 무대 경험도 있다. 모레노 감독은 프랑스 AS모나코, 스페인 그라나다, 러시아 FC소치 등을 이끌었다. 화려한 우승 경력보다는 다양한 환경에서 팀을 운영해 본 경험과 전술 설계 능력을 앞세운 지도자로 평가된다.대표팀 코칭스태프 역시 스페인 색채가 짙다. FC소치에서 모레노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가 합류하고, 하신트 마그리냐,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피지컬 코치 하비에로 초카로, 골키퍼 코치 니코 보쉬도 함께한다. 전술과 피지컬, 골키퍼 훈련까지 모레노 감독의 축구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들로 꾸려진 셈이다.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은 모레노 감독에 대해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전술적 대안을 제시했다”며 “대표팀 분위기 전환과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모레노 감독의 데뷔전은 오는 24일 에콰도르전이다. 이어 28일에는 우루과이와 맞붙고, 10월에는 베네수엘라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한다. 11월에도 두 차례 A매치가 예정돼 있다. 남미와 중앙아시아 팀을 상대로 한 6경기는 모레노 감독의 지도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이번 임시 계약에는 연장 가능성도 포함됐다. 축구협회는 하반기 6경기에서 나타난 경기력과 결과, 선수단 장악력 등을 종합 평가한 뒤 내년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늘릴지 검토할 계획이다.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진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새로운 전술 색깔을 입히는 것이 모레노 감독에게 주어진 첫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