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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비선담, 지리산이 숨겨둔 비경

 수은주가 4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폭염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는 가운데, 지리산의 마지막 원시림으로 불리는 칠선계곡이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안식처로 주목받고 있다. 천왕봉 북쪽 자락을 따라 약 18km에 걸쳐 뻗어 있는 이 계곡은 험준한 지형 덕분에 인간의 손길을 타지 않은 태고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의 터전인 이곳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자연의 시간이 인간의 속도보다 우선시되는 지리산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힌다.

 

칠선계곡으로 향하는 여정은 경남 함양군 추성마을에서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다 보면 군량미를 보관하던 뒤주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두지동 마을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가꾼 야생화 정원이 탐방객들을 반기며 산촌의 평온한 정취를 전한다.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나무들이 만든 천연 터널이 뜨거운 햇살을 차단하고,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강인한 나무뿌리들이 원시림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탐방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갈수록 칠선계곡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일곱 선녀의 전설이 깃든 선녀탕은 바닥의 자갈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에메랄드빛 수면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물빛과 기암괴석, 그리고 짙은 이끼를 두른 바위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신선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옥녀탕을 지나 숲이 더욱 깊어지는 구간에 들어서면 한낮의 폭염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계곡의 백미로 꼽히는 비선담에 도착하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푸른 소가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쉼 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와 수면에 거울처럼 비치는 숲의 형상은 탐방객들에게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수천 년 동안 같은 길을 흘러온 물줄기와 그 시간을 묵묵히 지켜온 숲 앞에서 인간은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임을 깨닫게 된다. 자연이 스스로를 보존하며 지켜온 이 거대한 생태계는 그 자체로 위대한 유산이다.

 


칠선계곡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전국의 산을 돌며 환경 정화 활동을 펼치는 자원봉사자들과 국립공원을 지키는 이들의 정성이 모여 원시의 풍경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탐방객들 역시 자연의 품을 빌려 잠시 쉬어가는 만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숲과 교감할 때 자연은 비로소 자신이 품은 가장 깊은 속살을 내어주며 지친 영혼을 다독인다.

 

여름철 계곡을 찾는 행위는 이제 단순한 온도 조절을 넘어 삶의 속도를 늦추는 치유의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칠선계곡이 선사하는 짙은 숲의 향기와 청량한 물소리는 폭염에 마모된 심신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걷는 이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시원한 바람만이 아니다. 수백 년을 견뎌온 나무와 바위가 건네는 무언의 위로, 그리고 지리산이 허락한 원시의 평화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물며 일상을 살아갈 힘을 보탠다.

 

나경원·윤상현 충돌, 국조특위가 전쟁터?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하는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윤상현 의원이 당내 강성 지지층에 의해 윤리위원회에 제소되면서 여권 내부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 약 2만 명은 윤 의원이 선관위 의혹 조사 과정에서 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태도를 보였다며 위원장직 사퇴와 징계를 공식 요구했다. 이는 당 지도부와 강성 당원들이 비당권파 의원들을 압박하는 이른바 ‘징계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당내 민주주의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이번 논란의 발단은 지난 10일 열린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서 비롯되었다. 윤 의원은 선관위의 투표율 입력 오류가 실제 득표수 조작으로 이어졌다는 의혹에 대해 논리적 비약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주진우, 김은혜 의원 등 자당 소속 특위 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고성이 오갔고, 윤 의원이 선관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원들은 윤 의원의 이러한 태도가 당의 투쟁 동력을 약화시킨다며 징계 서명 운동을 벌였다.윤 의원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나경원 의원에게 공개적인 ‘끝장 토론’을 제안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나 의원이 합리적인 선을 무너뜨리고 득표수 조작이라는 프레임으로 당을 위험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성 지지층의 분노에 편승하는 정치는 당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나 의원은 특위 위원장이 부실과 부정의 증거를 섣불리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 맞받아쳤다.당 지도부 역시 윤 의원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윤 위원장의 특위 운영 방식과 발언들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너무 많다며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지도부가 사실상 윤 의원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풀이되며, 이는 윤리위 징계 절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지도부의 이러한 기류가 비당권파를 향한 조직적인 압박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현재 국민의힘 윤리위는 조경태, 권영진, 진종오 의원 등 이미 징계 절차가 개시된 의원들에 대한 소명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오는 18일 회의에서는 윤상현 의원에 대한 제소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할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만약 윤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까지 시작될 경우, 당내 소수 의견을 가진 의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정당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국정조사의 본질인 진상 규명보다 당내 주도권 다툼과 징계 공방이 앞서는 현 상황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적 실책을 바로잡아야 할 특위가 계파 갈등의 전쟁터로 변질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윤리위의 결정이 당의 통합을 이끌어낼지, 아니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될지는 18일 회의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통해 정당 내 이견 조율 능력이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