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엔저에 환전 폭주, 19개월 만에 최대치 경신

 역대급 엔화 약세 현상이 지속되면서 국내 거주자들의 엔화 환전 규모가 약 1년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주요 시중은행에서 이뤄진 엔화 환전액은 315억 엔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화 가치는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 따른 결과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일본을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의 실수요와 향후 환율 반등을 노린 투자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올해 전체 엔화 환전 규모는 이미 지난해 연간 기록의 70%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연초부터 꾸준히 증가하던 환전액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7월 들어 원·엔 환율이 800원대 후반까지 밀려나자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다른 해외 여행지의 매력도가 떨어진 반면,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가가 저렴해진 일본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외환 시장에서는 원화와 엔화의 엇갈린 행보가 이번 현상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국내 기업의 대규모 외화 조달 자금이 원화로 환전되면서 원화 가치는 상승 압력을 받은 반면, 일본 엔화는 달러당 164엔에 육박할 정도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환율의 변화는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의 원·엔 환율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곧바로 시중은행 창구의 엔화 매수 열풍으로 이어졌다.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엔화를 저점 매수 기회로 삼는 '환테크' 움직임도 뚜렷하다. 이달 들어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약 700억 엔 가까이 급증하며 1조 엔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당장 일본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엔화 가치가 바닥을 쳤다는 판단 아래 미리 엔화를 사두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 금리의 향방과 일본 금융당국의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향후 엔화 가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기술적 분석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850원선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 성급한 몰빵 투자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연초 1조 엔을 상회했던 예금 잔액과 비교하면 현재의 증가세는 다소 완만한 편이며, 이는 엔화의 단기적 반등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일본 여행 수요가 정점에 달하는 8월 초까지 엔화 환전 열기가 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환전 수수료 우대 혜택을 강화하며 고객 유치에 나섰으며, 공항 환전소는 몰려드는 이용객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일본 경제의 불확실성과 미국의 통화 정책 변화가 맞물린 가운데, 엔저를 활용하려는 개인들의 자금 이동은 당분간 금융권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앞 근조화환 시위 "레버리지 퇴출하라"

 국내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뒤흔든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대해 여야 정치권이 금융 당국의 실책을 강력히 질타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2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의 시장 혼란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며, 오는 31일부터 시행되는 기본예탁금 3,000만 원 인상안에 이어 추가적인 규제 강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에는 예탁금 기준을 더 높이거나 레버리지 배율을 하향 조정하고, 거래 대상을 전문 투자자로 한정하는 등의 고강도 대책이 포함될 전망이다.정치권은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의 본질인 분산 투자 원칙이 훼손된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단일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고위험 상품에 ETF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 투자자에게만 해당 상품의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을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했다. 야당 측에서는 대책 마련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과 함께 기본예탁금을 5,000만 원까지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이번 사태를 금융 당국이 초래한 '인재'로 규정하며 날을 세웠다. 일부 의원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배경에 의구심을 표하며, 선거 등을 의식한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 정부 들어 증시 변동성이 극심해진 점을 꼬집으며, 경제 라인의 전면적인 교체와 정책 실장의 경질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이러한 외압 의혹에 대해 이억원 위원장은 해외 시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 차원이었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글로벌 스탠다드 부합 요청에 따라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는 설명이다. 함께 출석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또한 현재의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장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감독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덧붙였다.시장 밖의 분노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폐지를 주장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근조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설치됐다. 주식시장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화환에 '도박장으로 변질된 증시'나 '레버리지 상품 즉각 퇴출'과 같은 강도 높은 비판 문구를 적어 당국의 무능함을 규탄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투기판을 깔아주었다며 실질적인 손실 보전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금융당국은 이번 정무위 보고를 토대로 세부적인 시장 안정화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원성과 정치권의 책임 추궁이 거세지고 있어, 단순한 제도 수정을 넘어선 근본적인 신뢰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가져온 후폭풍이 증시를 넘어 정국 전체를 흔드는 대형 악재로 부상하면서, 향후 금융 정책의 방향성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