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K-조선 손잡는 미국, 함정 협력 물꼬 텄다

 미국 연방 하원이 주한미군 감축을 방지하는 강력한 견제 장치와 한국과의 조선 분야 협력을 명시한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켰다. 현지시간 22일 가결된 이번 법안은 약 1조 1,500억 달러 규모의 국방 예산을 승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찬성 216표 대 반대 212표의 근소한 차이로 본회의를 넘었다. 특히 이번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인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예산 사용 제한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법안의 핵심은 주한미군 규모를 현재 수준인 2만 8,500명 미만으로 줄이는 데 어떠한 국방 예산도 투입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점이다. 이는 기존 NDAA보다 강화된 조항으로, 다른 관련 법에 의해 배정된 예산까지 전용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미군 감축을 전격 단행하며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미 의회가 주한미군을 한미 동맹의 핵심 자산으로 재확인하며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방어막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하원 NDAA는 미국의 부족한 조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법안에 적시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의 인식' 섹션에 포함되었으나, 미 해군력 증강을 위해 한국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는 정책적 방향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미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을 넘어 신규 건조 분야까지 협력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외국 조선소에서의 전투함 건조를 금지하는 보호무역주의 조항이 포함된 점은 변수다. 하지만 법안이 금지 대상을 '전투함'으로 한정함에 따라, 지원함이나 보조함 등은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졌다. 한국 정부와 조선업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적 권한을 발휘해 한국 내 함정 건조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한미 양국은 이미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투자를 합의했으며, 23일 워싱턴 DC에 한미조선협력센터가 개소하며 본격적인 실무 협의에 돌입한다.

 


정치적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다. 이번 투표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소속 정당의 노선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 표심을 보였다. 공화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 정책을 뒷받침하는 예산 패키지 가결에 집중한 반면, 민주당은 해당 예산이 민생 지원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며 반대했다. 특히 이란전 지원을 위한 950억 달러 규모의 별도 예산안도 공화당 주도로 통과되는 등 미 정계 내의 안보 우선주의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향후 NDAA는 상원의 별도 처리 절차를 거친 뒤 상·하원 단일안 도출 과정을 밟게 된다. 최종안이 마련되면 다시 양원의 승인을 얻어 대통령의 서명으로 확정된다. 주한미군 유지와 조선 협력이라는 한국 측의 핵심 이익이 법안에 담긴 만큼, 최종 확정까지 한미 양국의 긴밀한 외교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번 하원 통과는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미 동맹의 결속력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미 의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가습기살균제 서영철 대표 별세, 투쟁은 계속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 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가 투병 끝에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서 대표는 지난 11일 급성 기흉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사망으로 정부에 인정받은 참사 피해 사망자는 총 1,422명으로 늘어났다. 고인은 생전 동료들에게 자신의 장례 대신 광화문광장에서의 투쟁을 당부했을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참사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인의 삶은 2000년대 초반 옥시와 애경의 제품을 사용한 이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호흡기 장애와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 복합적인 질병을 얻은 그는 휠체어와 산소발생기에 의지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한때 건실한 사업가였던 서 대표는 오랜 투병 생활로 경제적 기반과 가정의 평온을 잃었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을 위해 2016년부터 본격적인 시민사회 활동에 뛰어들었다.서 대표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자문위원과 피해자 대표 등을 역임하며 참사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 앞장섰다. 특히 2022년 SK 본사 앞 텐트 농성과 최근까지 이어진 경찰청 앞 1인 시위 등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켰다. 올해 역시 국회와 광화문을 오가며 현행 특별법의 독소 조항 개정을 요구하는 등 숨 가쁜 행보를 이어갔으나, 사무실에 맡겨둔 산소통은 결국 주인을 잃은 유품이 되고 말았다.환경보건시민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가해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제품 개발과 원료 공급을 담당했던 기업들과 당시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는 정부 부처 중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이번 사안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철저한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시민단체가 추산하는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자는 약 95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사망자는 2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 피해를 신고한 인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실제로 기업으로부터 정당한 배상이나 보상을 받은 피해자는 500여 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참사가 공식 확인된 지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피해자는 여전히 법적, 경제적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참사 15주년을 맞는 오는 31일까지 환경보건단체들은 집중 캠페인 기간을 운영하며 서 대표의 뜻을 기릴 예정이다. 이 기간에는 가해 기업들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 대응은 물론, 참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과 다큐멘터리를 매개로 한 북토크와 전시회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행사가 열린다. 피해자 단체는 서 대표가 남긴 마지막 유지를 받들어 정부와 기업이 완전한 해결책을 내놓을 때까지 단체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