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대급 실적에도 웃지 못한 하이닉스 직원들…왜?

SK하이닉스의 올해 성과급 협상이 ‘얼마를 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줄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회사 실적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자, 사측은 초과이익분배금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이를 사실상 현금 보상 축소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 21일 충북 진천상공회의소에서 집중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한국노총 소속 전임직 노조가 오전에 사측과 만났고, 민주노총 소속 기술사무직 노조도 오후에 별도 교섭을 이어갔다. 앞서 열린 본교섭에서 성과급과 복지 제도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데 따른 후속 논의다.

 

노조가 가장 민감하게 보는 안건은 PS 일부의 자사주 지급이다. 사측은 성과급 일부를 회사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비율이나 처분 제한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는 “시행된 지 1년도 안 된 제도를 다시 손보려는 것”이라며 지난해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성과급 제도를 대폭 바꿨다. 기존에는 PS 지급 상한이 기본급 1000%로 정해져 있었지만, 이를 없애고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기로 했다. 지급 방식은 산정액의 80%를 해당 연도에 지급하고, 나머지 20%를 이후 2년에 걸쳐 나누는 구조다. 이 기준은 10년 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올해 실적 전망은 성과급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198%, 영업이익은 405%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72%로,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290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수치를 적용하면 영업이익의 10%인 약 29조원이 PS 재원이 된다. 지난해 말 직원 수 3만4549명으로 단순 나누면 1인당 약 8억4000만원이다. 당해 지급분 80%만 계산해도 약 6억7000만원에 이른다. 물론 이는 세전 단순 평균이며 실제 수령액은 개인 임금, 직급,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노조는 성과급 재원이 커지자 회사가 현금 지급 부담을 줄이려 한다고 보고 있다. 자사주 지급이 의무화되면 직원들은 원치 않아도 주가 변동 위험을 떠안게 된다. 특히 전세자금, 주택 구입, 대출 상환처럼 당장 현금이 필요한 직원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이미 PS 일부를 자사주로 바꿀 수 있는 주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직원은 성과급의 10%에서 50%까지 원하는 비율을 선택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고, 1년간 보유하면 전환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로 받는다. 노조는 기존 프로그램처럼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율 전환과 의무 지급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측의 제안이 대규모 현금 유출을 완화하고 직원 보상을 장기 기업가치와 연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다만 자사주를 실제로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비용 효과는 달라진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활용하면 당장 현금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 새로 매입해야 한다면 별도 자금이 필요하다.

 

성과급을 둘러싼 논의는 회사 내부를 넘어 이해관계자 문제로도 확산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하면서도 주주와 협력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제도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현 단계에서 즉각적인 변경을 뜻한 것은 아니며, 실제 영향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복지 제도 개선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다. 특히 주택자금 지원 확대 요구가 크다. 삼성전자는 최근 무주택 임직원에게 주택 매매 자금 최대 5억원, 임차 자금 최대 3억원을 연 1.5% 금리로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주택자금 융자 한도는 최대 1억원 수준이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는 주택자금 한도 확대뿐 아니라 하이웰포인트, 연금, 교대수당 등 체감형 복지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한국노총 전임직 노조와 민주노총 기술사무직 노조가 각각 교섭하는 복수노조 체제다.

 

노사는 조만간 4차 본교섭에서 성과급 지급 방식과 복지 확대 방안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만큼 직원들의 보상 기대도 높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성과급 규모 싸움이 아니라 현금 보상과 주식 보상, 그리고 구성원의 선택권을 둘러싼 갈등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고려아연, 8370억원 손배소 승소…영풍은 항소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 측이 제기한 약 8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고려아연 이사들이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과정에서 법령과 정관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22일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한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내린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약 8370억원의 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사들의 경영상 판단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만한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취득 결정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사는 회사 경영에 관한 재량권을 가지며,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법원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결정이 이 같은 경영 판단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봤다. 당시 고려아연 이사들은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사들이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와 제한을 준수하고 외부 법률 자문 등을 검토했으며, 일정 수준의 할증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상법이나 회사 정관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규정된 배당가능이익과 관련해서도 영풍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당가능이익은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있는 한도를 의미하며,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도 해당 한도 내에서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이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총규모를 제한하는 것이지, 취득 자금이 어떤 회계 항목에서 마련됐는지를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자기주식 취득에 특정 재원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회사 정관에 중간배당을 할 때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재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다는 점도 쟁점이 됐다. 다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을 자기주식 취득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유추해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따라서 해당 재원을 자기주식 매입에 활용한 것이 정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이번 소송은 영풍이 2024년 11월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했다. 영풍은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다. 소송에서 주주 측이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돌아간다.영풍이 문제 삼은 것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였다. 영풍 측은 주당 약 56만원 수준이던 고려아연 주식을 89만원에 공개매수해 총 204만30주의 자기주식을 취득한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한 만큼 회사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결정한 이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 양측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은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 등을 검토한 이사회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풍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고려아연은 이날 별도로 진행된 한화 지분 매각 관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고려아연은 두 건의 판결을 통해 자기주식 공개매수와 한화 지분 매각을 둘러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영풍과 MBK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소송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송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양측은 상급심에서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위법성과 고려아연 이사회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다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손해배상 분쟁은 항소심에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이번 판결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사회가 내린 주요 의사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원은 자기주식 취득 결정 당시 이사들이 관련 법령과 절차를 검토하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영풍·MBK 측이 항소를 예고한 만큼,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적법성과 이사들의 경영 판단에 대한 책임 범위는 상급심에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