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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사무관은 왜 떠났나…기후부 내부망에 터진 ‘조직문화’ 호소

30대 기후에너지환경부 사무관이 숨진 뒤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과 부처가 동시에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갔다. 임관 10개월 차였던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와 상급자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힘들어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오면서, 기후부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경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기후부지부 등에 따르면 세종남부경찰서는 지난 1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후부 사무관 A씨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는지, 업무 부담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변인 진술과 생전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A씨는 기후적응과 에너지 정책 관련 업무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기후부 내부망에는 고인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동료 B씨는 지난 20일 게시판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고 “A사무관이 힘들어하는 것을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일이 마음에 남는다”고 적었다.

 

B씨는 A씨가 생전 동료들에게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인 질책을 받았고,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인이 조직 안에서 어려움을 표현하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절한 지원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특정 관리자 한 사람의 일탈로만 정리해서는 안 된다”며 “조직의 관행과 업무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부 감사관실도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관실은 유족 측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A씨의 상급자는 현재 담당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노조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부 노조 관계자는 “고인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나면 동료 직원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며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부처 차원의 조사와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도 내부 공지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김 장관은 “우리 곁을 떠난 A사무관의 명복을 빈다”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했다. 그는 “업무나 최근의 비보로 힘든 감정을 느끼는 직원이 있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장관은 조직 운영 방식도 되짚겠다고 했다. 그는 “저부터 무겁게 돌아보겠다”며 “기후부의 업무 방식과 조직 문화 가운데 동료를 힘들게 한 부분은 없었는지 살피겠다”고 밝혔다.

 

기후부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징계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다. 부처 관계자는 “고인의 사망 원인이 경찰 조사를 통해 확인되면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임 공무원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용 초기 공무원은 업무 적응과 조직 문화에 동시에 노출되는 만큼, 상담 창구와 멘토링 제도, 관리자 교육이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공직 사회의 업무 문화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순자·김건희 능가한 초대 영부인

 대한민국 초대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동안 이순자나 김건희 등 후대 영부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이국적 배경과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로웠던 환경 덕분에 검소하고 헌신적인 내조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과 비화들을 심층 분석해 보면, 프란체스카는 단순한 내조자를 넘어 국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소통령'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남편인 이승만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인사권을 전횡하며 제1공화국의 몰락을 부추긴 실질적인 권력의 한 축이었다.프란체스카의 권력 행사는 남편의 인사권을 가로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서를 좌천시키거나 장관에게 직접 인사를 통보하는 등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서슴지 않고 침범했다. 당시 외신들은 정부 관리들이 실력보다는 영부인에 대한 개인적 호의 덕분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도 묵인하거나 오히려 비서진에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영부인이 경무대 내부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며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인사 개입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프란체스카가 직접 장악한 '대한부인회'를 통한 조직적인 국정 관여였다. 그는 여성 단체들을 통합해 만든 이 거대 조직의 총재를 맡아 사실상의 세금을 징수하며 국가 속의 국가를 운영했다. 당시 언론들은 부인회 회비가 국민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반공식적인 세금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다. 대한부인회는 여성 권익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다. 대통령 추대 대회나 개헌 지지 분위기 조성의 선봉에는 항상 프란체스카의 부인회가 있었다.프란체스카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흐름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그는 비서진에게 정계의 어두운 소식이나 불쾌한 진실은 보고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대통령을 침묵의 벽 속에 가두었다. 남편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민심 이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정보가 차단된 노령의 대통령 뒤에서 프란체스카는 국정의 절반을 좌지우지하며 제1공화국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역사학계 일각에서는 프란체스카를 4·19 혁명을 촉발한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다. 제1공화국의 실질적인 투톱이 이승만-이기붕이 아니라 프란체스카와 박마리아였다는 분석은 당시의 폭정이 영부인들의 권력욕과 맞닿아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미뤄진 것은 이후 이어진 군부 독재 정권들이 이승만의 향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만약 4·19 혁명의 정신이 온전히 계승되었다면, 프란체스카는 건국 초기의 혼란을 가중시킨 '경국지색'의 전형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결국 프란체스카는 후대의 영부인 리스크를 예견한 원형과도 같은 인물이다. 독자적인 조직을 거느리고 남편의 장기 집권을 보조하며 인사권을 전횡했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사의 그 어떤 영부인보다도 국정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승만 정권의 모순과 실패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부인이라는 그늘 뒤에 숨어 권력을 행사했던 프란체스카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초대 영부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단순히 과거를 들추는 작업이 아니라, 오늘날 반복되는 영부인 잔혹사를 끊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성찰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