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연두·송정인 온다…경남도립미술관 29일 개막

 경남도립미스트관이 지역 예술의 뿌리와 현대적 확장을 동시에 조명하는 올해 두 번째 기획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진주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정연두와 통영이 낳은 자수 예술의 대가 송정인의 작품 세계를 각각 독립된 공간에서 펼쳐낸다. 오는 29일 정식 개막을 앞두고 미술관 측은 작품 설치와 전시장 정비를 위해 현재 일시 휴관에 들어간 상태다. 경남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이번 전시는 지역 미술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동시에 역사와 전통을 관통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미술 섹션의 주인공인 정연두 작가는 ‘알루미늄 오이’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명칭은 1980년대 소련의 전설적인 고려인 록 가수 빅토르 최가 이끌던 그룹 ‘키노’의 노래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나야 했던 고려인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수십 년이 흐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 후손들의 삶을 심도 있게 추적했다. 드로잉과 사진, 영상, 대형 설치 미술 등 36점의 작품은 낯선 땅에서 뿌리 내리려 분투했던 이들의 삶을 예술적 언어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정연두의 작업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이주민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생존의 의지를 감각적으로 포착해낸다.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풍경과 한국의 현대적 도시 공간이 겹쳐지는 영상미는 관람객들에게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공유하게 만든다. 특히 알루미늄 오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의 비극을 반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는 재이주 고려인들의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자수 예술의 한평생을 바친 송정인 작가의 ‘실로 만든 메아리’가 펼쳐진다. 1937년생인 송 작가는 한국 최초의 공예 전문 화랑인 ‘꽃가마’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 자수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전통 자수 기법을 충실히 따른 병풍부터 작가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추상 자수, 실생활에서 사용되던 생활 자수까지 130여 점의 방대한 작품군이 소개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완성한 자수 작품들은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 하나의 정교한 회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한다.

 


송정인의 작품 세계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문양과 색감을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점차 실의 질감과 색채의 대비를 활용해 현대적인 추상미를 구현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드로잉과 기록 사진들은 작가가 실과 바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온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려한 색실이 캔버스 위에서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선들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엮어낸 듯한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거장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는 이번 기획전은 오는 11월 1일까지 도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 작가들의 예술적 성취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현대미술과 전통 공예가 어우러지는 풍성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역사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정연두의 파격적인 설치 미술과, 인내의 시간을 실로 엮어낸 송정인의 섬세한 자수는 서로 다른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예술의 본질을 공유한다. 가을의 문턱에서 시작되는 이번 예술 축제는 경남의 문화적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국계 스틸 대사 부임, 18개월 공백 끝났다

 미셸 스틸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 태생인 스틸 대사는 입국장에서 한국어로 소회를 밝히며 고국으로 돌아온 만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관계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진 양국의 유대가 역내 평화의 핵심축임을 역설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동맹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번 부임으로 500일 넘게 비어 있던 주한 미국 대사직이 마침내 채워지게 되었다.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스틸 대사는 공화당 하원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중진 정치인 출신이다. 성 김 전 대사에 이어 두 번째 한국계 대사라는 타이틀은 양국 간 정서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교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 외교당국 역시 그가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여론을 미국 본토에 전달하는 효율적인 소통 창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눈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은 미 행정부의 핵심 의중을 한국 정부에 직접 전달하거나 조율하는 데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그러나 환영의 분위기 이면에는 날 선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스틸 대사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 의원 시절부터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 초당적인 강경 대응을 주문해왔으며, 이는 한국에 대중국 견제 전선 동참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온 점도,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가장 민감한 현안은 경제 영역에서 돌출되고 있다. 스틸 대사는 인준 청문회 당시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장벽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최근 한미 간 갈등 양상을 보이는 쿠팡 등 플랫폼 기업 규제 문제나 대미 투자 압박과 직결된다. 미국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그의 의지는 향후 통상 협상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입국 현장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는 그를 바라보는 국내의 복잡한 시각을 대변했다. 수십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은 스틸 대사의 임명을 반대하며 공항 내에서 거센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스틸 대사가 미국 기업을 비호하며 내정 간섭을 일삼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스틸 대사는 준비한 성명문을 낭독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으나, 그를 향한 시민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향후 활동 과정에서 넘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스틸 대사는 조만간 외교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고 공식적인 업무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국계라는 정체성과 미국 정치인으로서의 충성심 사이에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따라 향후 한미 관계의 온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가 가진 정·관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익을 챙기면서도, 미 우선주의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까다로운 외교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양국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그의 선언이 협력의 확대가 될지, 아니면 압박의 시작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