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티파니·최재림의 환상 호흡, 유미의 내면을 깨우다

 연인 사이에서 사랑의 무게가 평형을 이루기란 쉽지 않으며, 흔히 더 깊은 애정을 쏟는 쪽이 관계의 주도권을 잃고 상처받기 마련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이러한 사랑의 불균형 속에서 고뇌하는 평범한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작품은 관계의 끝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무대 위 세포들의 활약으로 그려내며,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게 만드는 거울치료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는 평범한 진리는 무대 위 역동적인 에너지를 통해 강력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공연은 5년여간 연재되며 전 세계적으로 35억 뷰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이동건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30대 직장인 김유미의 일상과 연애사를 머릿속 세포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이 독창적인 서사는 이미 드라마와 영화를 거쳐 검증된 바 있다. 제작사 샘컴퍼니와 스튜디오N이 5년에 걸쳐 공들여 준비한 이번 뮤지컬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역 양정웅 연출이 합류하며 시각적 상상력을 극대화했다. 웹툰 속 평면적인 세포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로 구현되면서 관객들은 유미의 내면 투쟁을 더욱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세포들의 소동극은 사실상 한 인간이 겪는 복합적인 자아 성찰의 과정이다. 이성과 감성, 불안과 본능을 상징하는 세포들이 유미의 부서 이동이나 연인 구웅과의 갈등 상황에서 벌이는 논쟁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내적 갈등을 대변한다. 관객은 단순히 유미의 연애사를 구경하는 제3자에 머물지 않고, 유미가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도록 응원하는 지지자가 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작품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 한 여성이 주체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서사로서의 깊이를 확보한다.

 

특히 이번 뮤지컬에는 원작에 없는 ‘견습 세포 109’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서사의 중심축을 잡는다. 이름조차 갖지 못한 109 세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유미의 회복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작품은 연인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사랑을 되찾는 기술보다는 사랑 앞에서 나를 지켜내는 태도에 집중한다. 2막의 주요 넘버인 ‘비로소 아름다워’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더 많이 사랑했기에 약자가 되어야 했던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치유의 정점을 찍는다.

 


작품의 완성도는 실력파 배우들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뒷받침된다. 최근 공연에서는 사랑 세포 역의 유리아와 109 역의 최재림이 고난도의 넘버들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최재림은 특유의 풍성한 성량과 관록으로 무대의 무게중심을 잡았고, 유리아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세포들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인공 유미로 분한 티파니 영은 화려한 스타성을 내려놓고 평범한 직장인의 고뇌와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자신만의 유미를 완성했다. 여기에 작가 세포 등 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조화가 더해져 창작 초연답지 않은 짜임새를 보여준다.

 

기술적인 시도 역시 돋보인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보기 드문 스크린 자막 시스템을 도입해 생소할 수 있는 창작 넘버의 가사 전달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는 관객들이 대사와 노래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 만드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세포들의 유쾌한 소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관객은 자신의 내면 세포들이 안녕한지 자문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아파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이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스스로를 치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공연은 8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이어진다.

 

 

 

스페인 우승해도 주인공은 케인? 레이스 요동

 스페인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정상에 오르며 무적함대의 부활을 알렸으나, 정작 축구계 최고 영예인 발롱도르 레이스에서는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이 가장 앞서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직후, 주요 스포츠 매체들은 일제히 발롱도르 파워랭킹을 최신화했다. 축구 전문 매체 골닷컴은 월드컵 우승 주역들을 제치고 바이에른 뮌헨의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을 전체 1위로 지목했다. 이는 월드컵 우승자가 발롱도르를 차지하던 오랜 관행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평가다.케인이 월드컵 우승 없이도 랭킹 정상에 오른 비결은 압도적인 개인 성적에 있다. 그는 이번 시즌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무려 73골 8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공격 포인트를 쌓아 올렸다.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오랜 '무관 굴레'를 벗어던진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비록 잉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 4강에서 도전을 멈췄으나, 대회 기간 6골을 터뜨리며 큰 무대 경쟁력을 입증했다. 매체는 케인이 보여준 꾸준함과 파괴력이 '가장 뛰어난 개인 시즌'이라는 발롱도르의 본질적 가치에 가장 부합한다고 분석했다.반면 월드컵 우승국 스페인의 스타들은 확실한 한 방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케인의 뒤를 쫓고 있다. 대회 최우수 선수인 골든볼을 수상한 로드리는 중원에서의 영향력은 독보적이었으나, 투표권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극적인 득점 임팩트가 부족했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혔다. 차세대 축구 황제로 기대를 모았던 라민 야말 역시 대회 내내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파워랭킹 2위에 올랐지만, 정작 결승전 등 결정적인 순간에 개인적인 마침표를 찍지 못하면서 케인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아르헨티나를 준우승으로 이끈 리오넬 메시는 파워랭킹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8골 4도움을 기록하며 '회춘 모드'를 선보인 메시는 다시 한번 발롱도르 포디움 입성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소속팀인 인터 마이애미가 유럽 중심의 축구 생태계에서 벗어난 미국 리그에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눈부셨으나, 시즌 전체의 경쟁력을 따지는 투표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빅리그 성적을 중시하는 투표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결승전의 주인공이었던 페란 토레스의 등장도 변수다. 그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스페인에 우승컵을 안겼지만, 시즌 전체의 꾸준함 면에서는 케인이나 로드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이번 발롱도르 투표는 '역대급 개인 기록'을 세운 케인과 '월드컵 우승'이라는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스페인 선수들 사이의 가치관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리베리나 스네이더가 월드컵과 트레블 성과에도 불구하고 개인 성적에 밀려 고배를 마셨던 사례가 재현될지 전 세계 축구계가 주목하고 있다.토트넘을 떠나 독일로 향했던 케인의 선택은 결국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분데스리가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트로피까지 손에 넣은 그는 이제 잉글랜드 선수로는 1966년 보비 찰턴 이후 60년 만의 발롱도르 수상을 정조준하고 있다. 월드컵 우승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앞세운 스페인의 도전을 뿌리치고 케인이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만약 케인이 수상에 성공한다면, 이는 현대 축구에서 개인의 퍼포먼스가 팀의 성과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