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 추문에 무너진 美 중간선거, 양당 유력 후보 줄사퇴

 미국 중간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후보들이 성 추문에 휩싸여 잇따라 낙마하면서 워싱턴 정치권이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특히 민주당이 연방 상원 다수당 탈환을 위해 사활을 걸었던 메인주에서 핵심 후보가 성폭행 의혹으로 전격 사퇴하며 선거 전략에 치명적인 차질이 빚어졌다. 해병대 출신으로 진보 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레이엄 플래트너 후보는 전 연인의 폭로와 당 지도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9일(현지시간) 후보직 내려놓기를 선택했다.

 

플래트너의 몰락은 민주당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는 '노동자 중심 정치'를 내세워 버니 샌더스 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과거 술에 취해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구체적인 폭로가 나오면서 지지 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본인은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척 슈머 원내대표 등 당 수뇌부까지 사퇴를 종용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민주당은 급히 대체 후보 선출에 착수했으나 경합주인 메인주의 민심 이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성 비위로 인한 정치적 참사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던 에릭 스월웰 하원의원 역시 전직 보좌관을 포함한 여성 4명으로부터 성범죄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4월 의원직을 던지고 정계를 떠났다. 민주당 내 중진이자 차기 주지사 1순위로 꼽히던 그의 낙마는 당내 권력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유력 후보들이 연달아 도덕성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후보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공화당 역시 성 관련 추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텍사스주의 토니 곤잘레스 의원은 보좌관과의 부적절한 관계와 불륜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해당 보좌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며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곤잘레스는 불륜 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4월 하원의원직에서 물러났으며, 이는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에서조차 당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양당 모두 핵심 지역구에서 후보를 잃으면서 중간선거 구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 유권자들의 높아진 도덕적 잣대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개인적인 사생활로 치부되던 문제들이 이제는 공직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최우선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SNS를 통한 폭로와 여론 형성이 빨라지면서 당 차원의 조직적인 엄호가 불가능해진 점도 후보들의 조기 낙마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질수록 숨겨진 개인 비위가 드러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승패를 가를 경합주에서 발생한 이러한 공백은 결국 무당층의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당은 상원 탈환을 위해, 공화당은 수성을 위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검증된 후보를 찾기란 쉽지 않은 과제다. 각 당은 후보 검증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있지만, 이미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우려가 깊다. 성범죄 의혹으로 얼룩진 이번 선거판은 정책 대결보다는 도덕성 싸움으로 흐르며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한국계 스틸 대사 부임, 18개월 공백 끝났다

 미셸 스틸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 태생인 스틸 대사는 입국장에서 한국어로 소회를 밝히며 고국으로 돌아온 만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관계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진 양국의 유대가 역내 평화의 핵심축임을 역설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동맹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번 부임으로 500일 넘게 비어 있던 주한 미국 대사직이 마침내 채워지게 되었다.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스틸 대사는 공화당 하원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중진 정치인 출신이다. 성 김 전 대사에 이어 두 번째 한국계 대사라는 타이틀은 양국 간 정서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교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 외교당국 역시 그가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여론을 미국 본토에 전달하는 효율적인 소통 창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눈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은 미 행정부의 핵심 의중을 한국 정부에 직접 전달하거나 조율하는 데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그러나 환영의 분위기 이면에는 날 선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스틸 대사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 의원 시절부터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 초당적인 강경 대응을 주문해왔으며, 이는 한국에 대중국 견제 전선 동참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온 점도,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가장 민감한 현안은 경제 영역에서 돌출되고 있다. 스틸 대사는 인준 청문회 당시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장벽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최근 한미 간 갈등 양상을 보이는 쿠팡 등 플랫폼 기업 규제 문제나 대미 투자 압박과 직결된다. 미국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그의 의지는 향후 통상 협상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입국 현장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는 그를 바라보는 국내의 복잡한 시각을 대변했다. 수십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은 스틸 대사의 임명을 반대하며 공항 내에서 거센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스틸 대사가 미국 기업을 비호하며 내정 간섭을 일삼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스틸 대사는 준비한 성명문을 낭독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으나, 그를 향한 시민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향후 활동 과정에서 넘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스틸 대사는 조만간 외교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고 공식적인 업무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국계라는 정체성과 미국 정치인으로서의 충성심 사이에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따라 향후 한미 관계의 온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가 가진 정·관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익을 챙기면서도, 미 우선주의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까다로운 외교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양국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그의 선언이 협력의 확대가 될지, 아니면 압박의 시작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