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모아

"보수에 인물 없다" 김종인, 한·오·이 정조준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협상 전략과 보수의 현주소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김 전 위원장은 30일 진행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이 법제사법위원장직 확보에 매몰되기보다 무너진 보수의 가치와 미래 비전을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양보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협상에 매달리는 것은 정당의 모양새만 해칠 뿐이라며 냉정한 현실 인식을 촉구했다.

 

과거 2020년 미래통합당 시절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내주었던 경험을 회상한 김 전 위원장은 당시의 결정이 오히려 여당의 자만과 무리수를 유도하는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국정 운영의 모든 책임을 여당이 지도록 하는 것이 야당으로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고 회고하며, 현재의 법사위원장 자리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여당의 독주에 따른 책임을 부각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유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보수 진영의 인물난과 리더십 부재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진단을 내놓았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랑스의 젊은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가 명확한 비전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한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보수 진영의 유력 인사들이 구체적인 해법 없이 정치적 수사만 늘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미래 설계를 국민 앞에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장관 등을 향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겨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들이 보수층의 기대를 받고는 있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인 비전을 보여준 적은 없다고 일갈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인물다운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현재 보수 진영이 겪고 있는 인물 기근 현상과 정책적 빈곤을 동시에 저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운영의 경직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위원장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징계 논의 등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당의 효율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김재섭, 김용태, 우재준 등 당내 젊은 피를 억압하는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보수 정당으로서의 생명력이 다할 수 있다는 경고다. 보수 진영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상당히 오랜 시간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냉혹한 전망이다.

 

결국 김 전 위원장의 메시지는 국민의힘이 원 구성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음 총선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그의 경고는 현재의 교착 상태에 빠진 여당 지도부에 무거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보수의 비전 확립이라는 본질적인 숙제를 외면한 채 자리싸움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그는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미프진 허용 검토에 산부인과계 발칵 “가이드라인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절 유도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사용 허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입법이 장기간 멈춰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자 산부인과계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법적 책임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성평등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를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한 직후다. 정부가 발 빠르게 부처 협의에 착수한 것은 온라인 불법 유통과 제도 공백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임신중절 유도 약물로, 현재 10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0년 이를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도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식 판매와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어떤 기준과 절차를 둘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이 공백은 불법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정식 유통망이 없다 보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나 온라인 판매자를 통해 미프진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5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거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사례는 3189건에 달한다.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법으로 획일적인 주수 기준을 정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라며, 임신부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련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부작용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의료진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에서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법적 테두리 없이 약물을 처방·판매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진료 지침과 응급 대응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국내 도입 절차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있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사용 중인 약이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가교 임상 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미프진 논란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여성 건강권, 의료진의 법적 책임, 불법 유통 차단 문제까지 얽힌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권 관리 필요성을 앞세워 논의를 본격화한 가운데, 의료계는 안전성과 법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