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EU, 미국산 AI 의존 끝낸다

 미국 정부가 앤스로픽의 최신 인공지능 모델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해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강력한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건 이번 조치로 인해 유럽을 포함한 해외 이용자들은 최첨단 AI 기술로부터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응하여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앤스로픽을 역내로 유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며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면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디지털화 담당 국무차관은 유럽연합 기술 담당 집행위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유럽이 혁신 기술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는 유럽이 단순히 외부의 결정을 집행하는 존재에 머물지 않으려면 앤스로픽 같은 핵심 기업이 유럽 내에 전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쥐고 있는 기술적 '킬 스위치'로부터 벗어나 유럽만의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비공개 서한을 통해 자국 내 100여 개 기업과 기관에만 한정적으로 미토스5의 사용을 허가하며 기술 통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선별적 허용 방식은 오픈AI의 차세대 모델인 GPT-5.6 등 다른 최첨단 서비스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가 지정한 특정 기관에만 기술을 우선 제공하는 폐쇄적인 방식이 고착화되면서, 글로벌 AI 시장은 미국 중심의 폐쇄적 블록과 그 외 지역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기술 무기화에 맞서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CADA)'을 발표하며 기술 주권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법안은 향후 5년에서 7년 안에 유럽 내 데이터센터 수용 능력을 현재의 3배로 늘리고, 유럽산 반도체를 사용하는 시설에 대해 전력망 접속 우선권과 요금 감면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부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내부의 자생적인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칩스법 2.0' 역시 유럽 기술 자립의 핵심 축이다. 유럽연합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채택을 장려하고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는 등 지속 가능한 AI 공장 설립을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누군가가 유럽의 디지털 서비스를 임의로 중단시킬 수 있는 상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만 유럽의 기술 자립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유럽 내 기술의 80% 이상이 외부에서 유입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시점을 2030년경으로 내다보면서도, 회원국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기술 독립을 위한 법안 통과와 투자를 늦추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미프진 허용 검토에 산부인과계 발칵 “가이드라인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절 유도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사용 허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입법이 장기간 멈춰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자 산부인과계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법적 책임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성평등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를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한 직후다. 정부가 발 빠르게 부처 협의에 착수한 것은 온라인 불법 유통과 제도 공백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임신중절 유도 약물로, 현재 10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0년 이를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도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식 판매와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어떤 기준과 절차를 둘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이 공백은 불법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정식 유통망이 없다 보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나 온라인 판매자를 통해 미프진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5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거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사례는 3189건에 달한다.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법으로 획일적인 주수 기준을 정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라며, 임신부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련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부작용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의료진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에서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법적 테두리 없이 약물을 처방·판매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진료 지침과 응급 대응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국내 도입 절차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있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사용 중인 약이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가교 임상 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미프진 논란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여성 건강권, 의료진의 법적 책임, 불법 유통 차단 문제까지 얽힌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권 관리 필요성을 앞세워 논의를 본격화한 가운데, 의료계는 안전성과 법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