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3억 낙찰 분청사기, 80년 방황 끝 보물 됐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분청사기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세계 미술 시장을 뒤흔들었던 유물이 마침내 국가 지정 문화유산인 보물 반열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은 26일 '분청사기 음각선어문 편병'을 비롯해 사찰 벽화와 불교 조각 등 총 5건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지정된 편병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전라도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투박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조선 특유의 미학이 응축된 걸작으로 손꼽힌다.

 

해당 편병은 물레로 빚은 둥근 몸체를 두드려 납작하게 만든 '자라 모양'의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 면에는 물살을 가르며 역동적으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반대편에는 현대적인 감각의 기하학적 선문이 조화를 이룬다. 국가유산청은 이 유물이 지닌 독창적인 구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며, 조선 초기 분청사기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이 유물의 보물 지정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굴곡진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귀환의 서사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일본인 소장가에 의해 국외로 반출된 편병은 이후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치며 타지를 떠돌았다. 그러다 지난 2018년 뉴욕 경매 시장에 등장했고, 당시 낮은 추정가의 20배가 넘는 약 33억 2,500만 원에 낙찰되며 분청사기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랜 방황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적 보호를 받게 된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사찰의 예술적 가치를 담은 벽화들도 나란히 보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 벽화'는 임진왜란 이후 불교 재건 과정에서 나타난 삼불 신앙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특히 관음보살도와 달마대사 벽화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희소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벽화'는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보살의 자비로운 모습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불화의 양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도난의 아픔을 딛고 되찾은 불교 유산들도 이번 보물 지정에 포함되어 의미를 더했다. 1989년 완주 위봉사에서 도난당했다가 2016년 기적적으로 회수된 목조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은 17세기 초 보살상 중에서도 드문 대규모 크기를 자랑하며 조각사 연구의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18세기 화승 의겸의 화풍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수 흥국사 제석천·천룡도' 역시 당대 불화 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확정되었다.

 

이번 대규모 보물 지정은 해외 환수 문화재와 도난 회수 유물, 그리고 사찰 건축과 일체를 이루는 벽화의 가치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된 보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지자체 및 소장처와 긴밀히 협력할 방침이다.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혼이 깃든 유산들이 국가의 보호 아래 본연의 빛을 발하게 됨에 따라, 문화유산을 향한 국민적 관심과 보존 의지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프진 허용 검토에 산부인과계 발칵 “가이드라인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절 유도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사용 허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입법이 장기간 멈춰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자 산부인과계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법적 책임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성평등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를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한 직후다. 정부가 발 빠르게 부처 협의에 착수한 것은 온라인 불법 유통과 제도 공백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임신중절 유도 약물로, 현재 10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0년 이를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도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식 판매와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어떤 기준과 절차를 둘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이 공백은 불법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정식 유통망이 없다 보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나 온라인 판매자를 통해 미프진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5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거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사례는 3189건에 달한다.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법으로 획일적인 주수 기준을 정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라며, 임신부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련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부작용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의료진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에서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법적 테두리 없이 약물을 처방·판매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진료 지침과 응급 대응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국내 도입 절차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있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사용 중인 약이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가교 임상 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미프진 논란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여성 건강권, 의료진의 법적 책임, 불법 유통 차단 문제까지 얽힌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권 관리 필요성을 앞세워 논의를 본격화한 가운데, 의료계는 안전성과 법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