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페라하우스 수놓은 K-기업의 빛

 남반구의 겨울밤을 빛과 음악으로 채운 ‘비비드 시드니 2026’이 종합 예술 축제로서의 명성을 재확인하며 종료되었다. 올해 축제는 빛, 맛, 지혜, 음악이라는 네 가지 테마 아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등 주요 거점에서 200여 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가 5년 연속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여 현지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혁신적인 기술력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빛’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미디어 파사드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얀 응우에마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외벽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추상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 ‘오페라 문디’를 선보였고, 크리스 레빈은 하버브리지 인근에 설치한 ‘몰리큘 오브 라이트’를 통해 도시 전체를 환상적인 빛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러한 거대 규모의 예술 작품들은 시드니의 랜드마크와 어우러져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국내 기업 기아는 자사의 디자인 철학인 ‘반대의 것들이 하나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기아 리프랙션’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최신 전기차 모델인 EV3를 중심으로 역동적인 레이저 효과와 반사 구조물을 배치하여 어둠 속에서 공간이 변화하는 몰입형 예술을 구현해 냈다. 단순한 차량 전시를 넘어 브랜드의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빛의 언어로 풀어낸 기아의 시도는 현지 관람객들로부터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축제의 핵심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는 체험형 공간인 ‘스카이 포털 스튜디오’를 통해 관람객들과 직접 소통했다. 퍼스트 플릿 파크에 마련된 이 스튜디오에는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26 울트라를 활용해 창의적인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려는 방문객들의 대기 줄이 끊이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몰입형 포털 프레임과 모션 기반의 인터랙티브 체험을 즐기며 삼성의 압도적인 카메라 성능과 AI 기술력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이는 제품의 기능을 예술적 축제 안에서 흥미롭게 풀어낸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기록되었다.

 


음악과 강연 부문에서도 글로벌 스타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아카데미 수상 감독인 클로이 자오와 션 베이커를 비롯해 퓰리처상 수상 작가 제리 살츠 등 각 분야의 거장들이 특별 대담에 나서 지적 유희를 선사했다. 또한 41팀의 해외 아티스트들이 호주 무대 데뷔전을 치르며 축제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다양한 국적과 장르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비비드 시드니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 교류의 장임을 입증했다.

 

비비드 시드니 2026은 첨단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시드니 항구를 배경으로 펼쳐진 빛의 향연은 도시의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3일 동안 시드니를 밝힌 화려한 불빛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증명된 K-테크의 혁신과 예술의 감동은 전 세계 관객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미프진 허용 검토에 산부인과계 발칵 “가이드라인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절 유도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사용 허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입법이 장기간 멈춰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자 산부인과계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법적 책임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성평등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를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한 직후다. 정부가 발 빠르게 부처 협의에 착수한 것은 온라인 불법 유통과 제도 공백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임신중절 유도 약물로, 현재 10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0년 이를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도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식 판매와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어떤 기준과 절차를 둘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이 공백은 불법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정식 유통망이 없다 보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나 온라인 판매자를 통해 미프진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5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거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사례는 3189건에 달한다.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법으로 획일적인 주수 기준을 정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라며, 임신부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련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부작용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의료진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에서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법적 테두리 없이 약물을 처방·판매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진료 지침과 응급 대응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국내 도입 절차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있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사용 중인 약이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가교 임상 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미프진 논란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여성 건강권, 의료진의 법적 책임, 불법 유통 차단 문제까지 얽힌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권 관리 필요성을 앞세워 논의를 본격화한 가운데, 의료계는 안전성과 법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