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아

취업 대신 집안일, ‘전업자녀’가 늘고 있다

취업난과 고물가, 치솟은 주거비가 맞물리면서 부모 집에 머물며 살림을 맡는 이른바 ‘전업자녀’가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을 미루거나 포기한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 식사 준비, 빨래, 병원 동행 등 집안일을 담당하고, 그 대가로 용돈이나 생활 지원을 받는 형태다.

 

전업자녀는 말 그대로 전업주부의 역할이 성인 자녀에게 옮겨간 개념에 가깝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캥거루족’이나 ‘니트족’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사와 돌봄 노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던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신조어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실제로 월급이나 근로계약서 형태를 갖추는 사례도 소개됐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별도의 임금 계약은 없더라도 주거비와 식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가사 노동을 맡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와 SNS에서도 전업자녀의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미혼 성인들이 부모가 출근한 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한다. 일부는 아르바이트나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지만, 집안일 자체를 주요 일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업자녀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 청년층 고용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월세와 생활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독립해 살던 청년이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본가로 돌아오거나, 대학 졸업 후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다 가족 내 역할을 맡게 되는 사례도 나온다.

 

실제 청년 고용 지표도 녹록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5만5000명 줄었다. 반면 60세 이상과 30대 취업자는 증가해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면서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35세 시점에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70년대생의 경우 20%대였지만, 1981~1986년생은 41.1%로 높아졌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도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동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5~29세는 56%, 30~34세도 29.9%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전업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는 “가족이 함께 살며 역할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 취업난과 주거난 속에서 청년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가기 어렵다는 공감도 있다. 반면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는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자립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가 은퇴하거나 사망한 뒤 전업자녀가 경제적 고립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업자녀를 단순히 게으름이나 의존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저성장과 고물가, 늦어지는 독립 시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설명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업자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이미 나타난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MBK·메리츠 기싸움에 홈플러스 결국 '사망 선고'

 서울 서초구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평소보다 분주해졌다. 평소라면 신선식품을 채워 넣었을 시간이었지만, 이날 직원들은 대형 카트를 끌고 나와 진열된 상품들을 박스에 담아 옮기기 시작했다. 건어물 코너부터 생활용품 매대까지 곳곳에서 상품이 빠져나가며 텅 빈 공간이 늘어갔다. 갑작스러운 매장 정리 모습에 장을 보던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계산대 주변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는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에 대한 기업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벌어진 풍경이다.법원의 이번 결정은 홈플러스가 회생 계획안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금인 200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홈플러스가 자금 조달에 실패함에 따라 더 이상 회생 절차를 유지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자금 투입의 주체를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왔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했다. 법정 관리 신청 후 1년 4개월 동안 경영 정상화를 꿈꿨던 홈플러스는 이제 14일 안에 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실상 파산 절차를 밟게 될 처지에 놓였다.매장 현장의 혼란은 협력업체들의 발 빠른 대응에서 시작됐다.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대금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공급사들이 일제히 제품 철수를 요청하면서 매대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반찬 코너를 메우고 있던 도자기 제품들이 30분 만에 사라졌고, 냉동고에는 상품 대신 얼음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자체 기획 상품인 PB 제품조차 구색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온라인 공간에서도 홈플러스의 위기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30년 가까이 동네 상권을 지켜온 대형 마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소셜미디어에는 마지막 방문 인증 사진과 추억담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친숙한 로고송으로 기억되는 홈플러스의 몰락은 많은 소비자에게 한 시대의 종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얼굴을 익힌 매장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걱정하는 글들이 커뮤니티를 달구며, 단순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노동계는 정부와 대주주의 책임을 물으며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마트산업노조는 성명을 통해 1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며, 14일 이내에 공적 자금 투입을 포함한 긴급 회생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대주주와 채권단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노동자들만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며 즉각적인 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긴급 투쟁에 돌입했다. 정부 역시 대규모 실직 사태와 유통망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홈플러스에게 남은 시간은 단 2주뿐이다. 즉시항고를 통해 법원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2000억 원의 자금 조달 확약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대주주와 채권단 사이의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만약 이 기간 내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국내 유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홈플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협력업체의 줄도산 우려와 대규모 실직 공포가 엄습하는 가운데, 홈플러스 매장의 불빛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유통업계 전체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