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무용수 서사가 빚은 산수화

 무대 위에서 겹겹이 쌓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안무의 나열이 아니라 각자가 통과해온 삶의 계절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는 안무가 차진엽과 단원들이 서로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의 삶을 깊이 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연습실에 모여 앉아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멈춰있던 성장의 동력이 되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길었던 어둠을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이 되었다. 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며 60분의 무대를 공동의 산수화로 그려냈다.

 

박혜지 무용수는 2년 전 재연 당시 육아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인생의 가장 낮은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완벽한 무용수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내면의 무게는 춤을 가두는 보이지 않는 창살과 같았다. 그러나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선배 김미애의 따뜻한 안부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비로소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 2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마음의 사슬을 끊어내고 '해방'의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30년 차 베테랑 김미애 무용수에게도 이 작업은 자신만을 바라보던 지독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는 거울이 되었다. 과거에는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몸에 힘을 뺄 줄 몰랐으나, '몽유도원무'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먼저 듣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이제 그녀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내기보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안겨주는 '현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동료들에게 '대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녀의 변화는 춤의 본질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안무가 차진엽은 무용수들에게 기술적인 동작을 강요하는 대신 존재 자체의 자유를 부여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완성형 무용수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어, 그들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도록 유도했다. 무용수들은 안무가가 제공한 움직임이라는 재료에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양념을 더해 독창적인 요리를 완성해 나간다. 이러한 협업의 과정은 동작마다 새로운 감각의 층위를 쌓으며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적인 동력이 된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원'은 무용수들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차진엽 안무가에게는 치열한 생존의 비극 속에서도 연습실에서 느끼는 정화와 순환의 순간이 곧 도원이다. 김미애 무용수는 타인을 통해 배우고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 그 자체를 이상향으로 꼽았으며, 박혜지 무용수는 서로 사랑하며 작은 소망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자신만의 몽유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도원을 가슴에 품은 무용수들의 서사는 무대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결국 '몽유도원무'는 각 무용수가 자신이 통과하고 있는 계절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목에 서 있고, 누군가는 만개한 꽃길을 걷고 있지만, 이 모든 다름이 모여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무용수들은 이번 무대를 통해 자신의 내면 상태를 온전히 관객과 마주하는 숙제를 수행하며, 춤이 단순한 예술 형식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소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발걸음은 500년 전의 그림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도원을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15억의 침묵' 한화, 한국시리즈 돌풍 1년 만에 위기

 지난 시즌 KBO 리그에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던 한화 이글스가 1년 만에 가혹한 시련을 맞이했다. 암흑기를 견디며 수집한 특급 유망주들이 팀의 주축으로 성장해 결실을 보는 듯했으나, 올 시즌 들어 핵심 투수 자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화가 각별한 공을 들여 영입한 이른바 '5억팔 트리오' 문동주, 김서현, 정우주는 현재 부상과 구위 저하 등으로 인해 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팀의 미래를 상징하던 이들의 부진은 한화의 순위 싸움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가장 뼈아픈 대목은 에이스 문동주의 이탈이다. 2023년 신인왕이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인 문동주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도 전천후 활약을 펼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러나 올 시즌 초반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하더니 결국 관절 와순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미국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팀의 1선발 역할을 해줘야 할 자원이 시즌 아웃되면서 한화 선발진에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문동주의 공백은 단순한 투수 한 명의 부재를 넘어 팀 전체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뒷문을 책임져야 할 김서현의 상황도 처참하다. 지난해 33세이브를 올리며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발돋움했던 김서현은 올해 구속 저하와 제구 난조가 겹치며 완전히 무너졌다. 10점대가 넘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채 2군으로 내려간 그는 벌써 수개월째 1군 복귀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화 벤치는 그를 대신할 자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난해 김서현이 보여줬던 압도적인 구위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무리 투수의 부재는 경기 후반 역전패가 잦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트리오의 막내 격인 정우주 역시 2년 차 징크스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평균자책점 2점대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던 그는 올해 6점대 중반까지 치솟은 방어율로 고전 중이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의 부진이 정규시즌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김경문 감독은 정우주의 잠재력을 믿고 꾸준히 기회를 부여하며 독려하고 있지만,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투구 내용은 여전히 불안하다. 구위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결정적인 순간 장타를 허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한화가 만년 하위권의 설움을 씻기 위해 선택했던 '유망주 육성 올인' 전략은 지난해 확실한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하지만 투수진의 핵심인 세 선수가 동시에 부침을 겪으면서 리빌딩의 완성 단계에서 다시금 제동이 걸렸다. 고액의 계약금을 안겨주며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들이 한꺼번에 전력에서 이탈하거나 부진에 빠지는 시나리오는 구단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최악의 변수였다. 이는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한화의 투수진 구성이 가진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이기도 하다.현재 한화는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과 신예들을 총동원하고 있으나 '5억팔'들이 보여줬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문동주의 재활 성공 여부와 김서현의 구위 회복, 정우주의 징크스 탈출은 향후 한화 이글스의 몇 년을 결정지을 중대한 과제다. 김경문 감독 체제 아래서 이들이 다시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가 올 시즌 남은 기간 한화의 성적은 물론 내년 시즌 구상까지 좌우할 전망이다. 독수리 군단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이들 트리오의 부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