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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서해랑길 18코스, 근현대사 발로 읽는 답사

 한반도 내륙의 최남단인 해남 땅끝마을은 국토 순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장소다. 이곳은 남해안을 따라온 남파랑길 90코스의 종착지이자,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는 서해랑길의 출발점이라는 지리적 분기점을 형성한다. 방문객들은 모노레일이나 무장애 데크길을 통해 최남단 기점에 도달할 수 있으며, 특히 바다를 향해 뻗은 스카이워크는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일렁이는 푸른 물결을 마주하며 아찔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이 길의 끝에서 만나는 9m 높이의 땅끝탑은 한반도의 끝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된다.

 

땅끝탑 앞에 서서 바다를 응시하면 좌측으로는 굴곡진 남해의 해안선이, 우측으로는 수평선이 길게 뻗은 서해의 영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지리적 특성 덕분에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꼽히며, 마무리가 곧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순환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코리아둘레길은 바로 이곳에서 다시 북상을 시작하며 삶의 궤적과 닮은 긴 여정을 이어간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는 경계가 없지만, 여행자의 발걸음은 이곳에서 서해랑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국토의 서쪽 날개를 따라 올라간다.

 


서해랑길 14코스를 따라 북상하다 보면 공공기관이 운영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디자인의 '해남126 오시아노호텔'을 만나게 된다. 대한민국 공공건축 대상 우수상을 받은 이 호텔은 120개 전 객실이 서해를 향한 오션뷰로 설계되어 도보 여행자들의 피로를 씻어주는 안식처가 된다. 특히 수평선과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인피니티 풀은 이곳의 백미로, 저녁 무렵 바다 위를 지나는 여객선과 자동차 수출선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시설 수준은 공공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길은 해남을 지나 항구도시 목포로 이어진다. 서해랑길 18코스는 평화광장에서 시작해 갓바위와 삼학도공원을 거쳐 근대역사문화거리에 이르는 18.3km의 구간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발로 읽는 답사로와 같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옛 일본영사관 건물과 골목마다 숨어 있는 근대 건축물들은 항구 도시 목포가 지나온 격동의 세월을 묵묵히 증언한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길은 도시의 고유한 정취와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목포의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어 조성된 삼학도공원에는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이 공간을 지나면 '목포의 눈물'로 시대를 위로했던 가수 이난영을 기리는 난영공원이 나타난다. 도보 여행자들은 이곳의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예술과 정치가 어우러진 목포의 서사를 음미한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이정표와 기념비들은 걷는 행위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을 넘어 우리 국토의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임을 일깨워준다.

 

코리아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완주는 거창한 목표일 수 있지만, 진정한 본질은 갈 수 있는 만큼 묵묵히 발을 떼는 그 자체에 있다. 먼 목표점이 아닌 발밑의 흙과 주변의 풍경에 시선을 둘 때, 비로소 길 위에 축적된 무수한 이야기들이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땅과 나누는 느린 걸음은 우리 국토가 지나온 시간과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서사를 접하는 거대한 배움터가 된다. 땅끝에서 시작된 북상의 길은 완주라는 마침표 대신, 매 순간 마주하는 풍경과 인연을 통해 여행자의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미프진 허용 검토에 산부인과계 발칵 “가이드라인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절 유도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사용 허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입법이 장기간 멈춰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자 산부인과계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법적 책임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성평등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를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한 직후다. 정부가 발 빠르게 부처 협의에 착수한 것은 온라인 불법 유통과 제도 공백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임신중절 유도 약물로, 현재 10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0년 이를 허가했고, 세계보건기구도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식 판매와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어떤 기준과 절차를 둘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이 공백은 불법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정식 유통망이 없다 보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나 온라인 판매자를 통해 미프진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5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거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사례는 3189건에 달한다.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법으로 획일적인 주수 기준을 정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라며, 임신부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련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부작용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의료진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에서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법적 테두리 없이 약물을 처방·판매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처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진료 지침과 응급 대응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국내 도입 절차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도 있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사용 중인 약이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가교 임상 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미프진 논란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낙태 관련 입법 공백, 여성 건강권, 의료진의 법적 책임, 불법 유통 차단 문제까지 얽힌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권 관리 필요성을 앞세워 논의를 본격화한 가운데, 의료계는 안전성과 법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