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형아트서울 화제의 주인공, 안정재 화백의 등단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제11회 조형아트서울’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특별한 신예 작가가 등장했다. 환갑을 넘긴 늦깎이 나이에 미술계에 입문해 10여 년간 치열한 수행의 시간을 보낸 안정재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일흔다섯을 맞이한 그는 이번 페어의 주요 부스인 청작화랑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동안 갈고닦은 예술적 성취를 대중 앞에 당당히 선보였다. 늦은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기성 작가들에 못지않은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전시된 9점의 작품 중 관람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인도 바라나시 여행의 기억을 형상화한 대작이다. 갠지스강가에서 목격한 화장(火葬)의 풍경과 그 옆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축제의 대비는 작가에게 삶과 죽음이 한 줄기 강물처럼 흐른다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안 화백은 당시 느꼈던 원초적인 충격과 감동을 뜨거운 붉은 색채로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화면 속 붉은빛은 단순히 강렬한 색감을 넘어, 죽음의 비극을 덮는 생명력과 건강한 삶의 기운을 상징하는 작가만의 고유한 언어로 읽힌다.

 


안 화백의 작업 방식은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이나 마음속에 맺힌 잔상, 그리고 오랜 세월 묵혀두었던 내면의 감정들을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물며 자유롭게 풀어낸다.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인 색층은 그가 지난 10년 동안 마치 사업을 하듯 독하게 작업에 매달려온 인고의 시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만학도라 낮추면서도 작품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했던 그의 노력이 화려한 색채의 향연으로 결실을 본 셈이다.

 

이번 전시 현장에는 남편인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도 함께해 아내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정 회장은 아내를 소개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빌렸다는 일화를 전하며, 안 화백을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의 재료로 승화시킨 작가’라고 정의했다. 평생 기업가의 아내로 살아왔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화가로서 당당히 서 있는 아내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안 화백 역시 거장들과 함께 전시하게 된 것에 대해 겸손해하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안 화백은 이제 치열했던 10년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구성보다는 단순함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찾는 데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힘을 빼고 여유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적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깨달은 작가의 성숙함이 엿보인다. 그의 캔버스가 앞으로 어떤 단순미와 깊이를 담아낼지 미술계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조형아트서울은 국내외 102개 갤러리가 참여한 가운데 3,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는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았다. 3m가 넘는 대형 조각물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이색적인 풍경 속에서, 안정재 화백의 붉은 회화는 조각의 입체감에 밀리지 않는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삶의 황혼기에 꽃피운 그의 예술혼은 오는 7일까지 코엑스 B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쫓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 대신 집안일, ‘전업자녀’가 늘고 있다

취업난과 고물가, 치솟은 주거비가 맞물리면서 부모 집에 머물며 살림을 맡는 이른바 ‘전업자녀’가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을 미루거나 포기한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 식사 준비, 빨래, 병원 동행 등 집안일을 담당하고, 그 대가로 용돈이나 생활 지원을 받는 형태다.전업자녀는 말 그대로 전업주부의 역할이 성인 자녀에게 옮겨간 개념에 가깝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캥거루족’이나 ‘니트족’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사와 돌봄 노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이 표현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던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신조어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실제로 월급이나 근로계약서 형태를 갖추는 사례도 소개됐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별도의 임금 계약은 없더라도 주거비와 식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가사 노동을 맡는 방식까지 포함한다.유튜브와 SNS에서도 전업자녀의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미혼 성인들이 부모가 출근한 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한다. 일부는 아르바이트나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지만, 집안일 자체를 주요 일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전업자녀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 청년층 고용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월세와 생활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독립해 살던 청년이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본가로 돌아오거나, 대학 졸업 후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다 가족 내 역할을 맡게 되는 사례도 나온다.실제 청년 고용 지표도 녹록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5만5000명 줄었다. 반면 60세 이상과 30대 취업자는 증가해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면서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 비중도 커지고 있다.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35세 시점에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70년대생의 경우 20%대였지만, 1981~1986년생은 41.1%로 높아졌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도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동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5~29세는 56%, 30~34세도 29.9%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전업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는 “가족이 함께 살며 역할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 취업난과 주거난 속에서 청년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가기 어렵다는 공감도 있다. 반면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는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자립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가 은퇴하거나 사망한 뒤 전업자녀가 경제적 고립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전업자녀를 단순히 게으름이나 의존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저성장과 고물가, 늦어지는 독립 시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설명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업자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이미 나타난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