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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110%, 용지는 50%…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파문

선거는 끝났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일부 투표소에서 벌어진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 관리 체계 전반의 문제로 번지는 분위기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12곳과 강남구·광진구 각 1곳 등 모두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포기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개표 방송이 시작된 뒤에도 투표가 이어졌다.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막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항의도 있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의 비판은 거세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했고, 국정조사 필요성도 제기했다. 여당내부에서도 선관위 책임론이 나왔다.

 

논란이 커진 핵심은 투표용지 제작 방식이다. 선관위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체 유권자 수의 110% 수준에 해당하는 투표용지 제작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본투표용지는 송파구의 경우 유권자 수의 50% 수준만 인쇄됐다. 광진구와 강남구도 각각 50%, 55% 수준이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율과 본투표율을 고려해 본투표용지를 최소 50% 이상 확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남는 투표용지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과거 잔여 투표용지를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뒤, 불필요한 여분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투표소에서는 수요 예측이 빗나갔고,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가 지연되거나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참정권 침해 소지가 있는 중대한 선거 관리 실패”라며, 이번 사태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

 

선관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기표된 투표지를 바구니나 쇼핑백에 담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일었다. 이후에도 투표 현장 관리 부실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조직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앙선관위원 9명 중 대부분이 비상임위원이고, 위원장을 현직 대법관이 겸직하는 관행 때문에 조직 장악력과 책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유로 외부 감시가 제한돼 내부 폐쇄성이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선관위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단순한 사과만으로는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예산 집행, 현장 대응 체계, 조직 책임 구조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선거 관리의 핵심은 공정성뿐 아니라 유권자가 제때, 안정적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신뢰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10억' 망법 시행, 표현의 자유 논란

 온라인상의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막기 위한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7일부터 전격 시행되면서 디지털 생태계에 거센 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허위정보를 반복적으로 게시할 경우 강력한 경제적 징벌을 가하는 데 있다. 특히 수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이미 법원에서 허위로 판명된 정보를 다시 유포할 경우 최대 1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자칫 정당한 비판이나 의견 표명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법 시행과 함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목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기준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단순한 불쾌감이나 정치적 비판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 선동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경우에만 한정해 개입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혐오표현의 경계가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작성 경위나 사회적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이 과잉 검열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쏟아지고 있다.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부여된 관리 의무도 대폭 강화되었다. 네이버나 유튜브 같은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혐오표현 신고를 접수할 경우 자율 정책에 따라 삭제나 노출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정당한 사유 없이 방미통위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다만 플랫폼 기업 자체가 가중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지는 않으며, 책임은 정보를 직접 게재한 당사자에게 집중된다. 이는 플랫폼의 자율 규제를 독려하면서도 게시자의 책임 의식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운영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개인 창작자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 역시 이번 법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신문사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 허위조작정보로 판단될 경우 언론사도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다만 공익적 관심사나 공공복리를 위한 정보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예외 조항이 마련되었다. 또한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가 언론사나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의 계정을 임의로 정지하거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도록 제한해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성의 판단 기준을 두고 향후 법적 분쟁이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야권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입막음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법 시행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검은 마스크를 쓰고 회의에 참석하는 등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반면 여권과 정부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인격 살인과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 시행 첫날부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 해석이 충돌하면서, 향후 실제 과징금 부과나 손해배상 청구가 이뤄지는 첫 사례가 법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결국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릴지, 아니면 온라인 공론장을 위축시키는 족쇄가 될지는 향후 방미통위의 심의와 법원의 판결에 달려 있다. 이용자들은 허위정보 발견 시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갖춰 플랫폼에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발언이 법적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압박감도 안게 되었다. 디지털 주권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 셈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온라인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서는 투명한 심의 절차와 객관적인 기준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