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립오페라단, '피터 그라임스' 한국 초연

 영국 오페라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벤저민 브리튼의 걸작 '피터 그라임스'가 마침내 한국 관객과 만난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작품의 역사적인 국내 초연 무대를 연다. 영국의 한적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소문과 오해가 어떻게 한 개인을 파멸로 몰아넣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 사회극이다. 소년 견습생의 죽음 이후 주인공 피터 그라임스가 겪는 사회적 배제와 혐오의 과정은 현대 사회의 집단 심리와 맞닿아 있어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공연의 지휘봉은 피아니스트 출신의 알렉산더 조엘이 잡았으며, 연출은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정평이 난 줄리앙 샤바가 맡았다. 샤바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신화 속 인물이 아닌 현실의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실제 바다를 구현하는 대신 합창단과 배우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거대한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표현할 계획이다. 특히 영국 어촌의 분위기를 살린 녹청색 의상과 정교한 신체 연출은 관객이 마치 폭풍우 치는 해안가에 서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음악적으로는 브리튼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관현악법이 돋보인다. 지휘자 조엘은 이 작품이 현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처럼 장면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극 사이사이를 잇는 '바다 간주곡'은 새벽의 고요함부터 폭풍의 휘몰아침까지 바다의 다채로운 얼굴을 음악으로 그려내며 인물들의 내면적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안정한 화성과 날카로운 선율은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주인공 피터 그라임스 역에는 세계적인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와 김재석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벤트리스는 그라임스를 마을 공동체와 단절된 채 자신의 신념만을 쫓는 고독한 아웃사이더로 해석하며, 인물이 가진 정신적 고통과 어두운 과거를 깊이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함께 출연하는 테너 김재석은 유럽 무대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25년 만에 국내 복귀전을 치른다. 그는 거칠고 때 묻은 인간상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음악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도전적인 과제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전에 웹툰으로 줄거리를 공개하는 등 작품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박혜진 단장은 스토리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지닌 극적인 전달력이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압도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바리톤 양준모를 비롯한 출연진 역시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 이미 모든 감정과 서사를 담아두었다며,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높은 신뢰를 드러냈다. 방대한 합창 사운드와 정교한 관현악이 어우러진 이번 무대는 한국 오페라 지형도를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집단 폭력의 비극을 다룬 이 '스릴러 오페라'는 오는 21일까지 나흘간 무대를 지킨다.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오늘날, 피터 그라임스가 외치는 고독한 절규는 한국 관객들에게 단순한 예술적 감흥 이상의 성찰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거대한 감정의 폭풍 속으로 관객을 밀어 넣을 이번 초연은 20세기 오페라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국립오페라단의 야심 찬 도전이 한국 오페라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문화계의 시선이 예술의전당으로 향하고 있다.

 

신임 사무관은 왜 떠났나…기후부 내부망에 터진 ‘조직문화’ 호소

30대 기후에너지환경부 사무관이 숨진 뒤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과 부처가 동시에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갔다. 임관 10개월 차였던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와 상급자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힘들어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오면서, 기후부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지난 21일 경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기후부지부 등에 따르면 세종남부경찰서는 지난 1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후부 사무관 A씨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는지, 업무 부담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변인 진술과 생전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A씨는 기후적응과 에너지 정책 관련 업무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A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기후부 내부망에는 고인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동료 B씨는 지난 20일 게시판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고 “A사무관이 힘들어하는 것을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일이 마음에 남는다”고 적었다.B씨는 A씨가 생전 동료들에게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인 질책을 받았고,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인이 조직 안에서 어려움을 표현하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절한 지원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특정 관리자 한 사람의 일탈로만 정리해서는 안 된다”며 “조직의 관행과 업무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기후부 감사관실도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관실은 유족 측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A씨의 상급자는 현재 담당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다.노조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부 노조 관계자는 “고인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나면 동료 직원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며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부처 차원의 조사와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성환 기후부 장관도 내부 공지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김 장관은 “우리 곁을 떠난 A사무관의 명복을 빈다”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했다. 그는 “업무나 최근의 비보로 힘든 감정을 느끼는 직원이 있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당부했다.김 장관은 조직 운영 방식도 되짚겠다고 했다. 그는 “저부터 무겁게 돌아보겠다”며 “기후부의 업무 방식과 조직 문화 가운데 동료를 힘들게 한 부분은 없었는지 살피겠다”고 밝혔다.기후부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징계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다. 부처 관계자는 “고인의 사망 원인이 경찰 조사를 통해 확인되면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임 공무원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용 초기 공무원은 업무 적응과 조직 문화에 동시에 노출되는 만큼, 상담 창구와 멘토링 제도, 관리자 교육이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공직 사회의 업무 문화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