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민병도 작가 '도법자연', 들풀로 그린 생명의 아리랑

 민병도 작가가 서른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선보인다. 오는 6월 2일부터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4, 5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도법자연(道法自然)' 시리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흔들리는 들풀의 형상을 통해 불안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그 안에 내재된 강인한 생명력을 한국화 고유의 필치로 담아냈다. 짓밟히고 눌리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들풀의 의지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희망이 서린 아리랑의 선율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형상의 재현을 넘어 존재의 결을 더듬는 작가만의 독특한 사유 체계로 구축되었다.

 

작품의 제작 기법 또한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병도는 한지라는 전통적 매체 위에 먹을 두텁게 깔고, 그 위에 금분과 은분을 사용하여 모필로 채색하는 방식을 취한다. 먹의 깊은 어둠과 금·은분의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빛깔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들풀의 생명력을 숭고한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재료의 사용은 한국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탐구와 실험 정신이 반영된 결과로,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 사이에서 독자적인 회화 양식을 확립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노트를 통해 흔들림을 존재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이는 흔들림을 제거해야 할 불안 요소로 간주하는 일반적인 시각과는 궤를 달리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은 살아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그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자리를 지키는 행위 자체가 위대한 생명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탄생한 들풀과 아리랑의 시각화는 작가가 자연과 맺고 있는 내밀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민병도의 이번 전시를 자연을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그 안에서 자아를 확인하려는 동양적 가치관의 현대적 구현으로 평가한다. 김태곤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이 한국화의 본질을 찾기 위한 오랜 수련과 축적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자연의 도(道)를 본받는다는 의미의 '도법자연'은 단순히 제목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붓끝이 향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형상 너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유한다. 금분으로 묘사된 들풀의 가느다란 줄기는 마치 아리랑의 애절한 가락처럼 무대 위를 흐르고, 그 여백은 관람객의 사유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들풀이라는 소박한 소재를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인 강인함을 조명하며, 회복과 치유의 메시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이는 한국화가 지닌 서정적 힘이 현대 사회의 갈등과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번 개인전은 6월 7일까지 이어지며, 민병도 작가가 구축해온 예술적 지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국화의 전통적 미감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덧입힌 그의 작품들은, 우리 시대의 예술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들풀처럼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작가의 서른두 번째 기록은, 관람객들에게 삶을 버티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취업 대신 집안일, ‘전업자녀’가 늘고 있다

취업난과 고물가, 치솟은 주거비가 맞물리면서 부모 집에 머물며 살림을 맡는 이른바 ‘전업자녀’가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을 미루거나 포기한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 식사 준비, 빨래, 병원 동행 등 집안일을 담당하고, 그 대가로 용돈이나 생활 지원을 받는 형태다.전업자녀는 말 그대로 전업주부의 역할이 성인 자녀에게 옮겨간 개념에 가깝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캥거루족’이나 ‘니트족’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사와 돌봄 노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이 표현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던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신조어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실제로 월급이나 근로계약서 형태를 갖추는 사례도 소개됐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별도의 임금 계약은 없더라도 주거비와 식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가사 노동을 맡는 방식까지 포함한다.유튜브와 SNS에서도 전업자녀의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미혼 성인들이 부모가 출근한 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한다. 일부는 아르바이트나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지만, 집안일 자체를 주요 일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전업자녀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 청년층 고용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월세와 생활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독립해 살던 청년이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본가로 돌아오거나, 대학 졸업 후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다 가족 내 역할을 맡게 되는 사례도 나온다.실제 청년 고용 지표도 녹록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5만5000명 줄었다. 반면 60세 이상과 30대 취업자는 증가해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면서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 비중도 커지고 있다.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35세 시점에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70년대생의 경우 20%대였지만, 1981~1986년생은 41.1%로 높아졌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도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동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5~29세는 56%, 30~34세도 29.9%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전업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는 “가족이 함께 살며 역할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 취업난과 주거난 속에서 청년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가기 어렵다는 공감도 있다. 반면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는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자립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가 은퇴하거나 사망한 뒤 전업자녀가 경제적 고립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전업자녀를 단순히 게으름이나 의존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저성장과 고물가, 늦어지는 독립 시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설명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업자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이미 나타난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