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깃털 대신 손톱…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선사한 파격적 백조의 호수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재창조한 '백조의 호수(LAC)'는 클래식 발레가 지닌 박제된 우아함을 가차 없이 파괴하며 관객을 인간 심연의 결핍과 마주하게 한다.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프랑스어로 호수를 뜻하는 'LAC'라는 제목 뒤에 정신분석학적 의미의 결핍을 교묘하게 숨겨놓았다. 마이요는 순백의 깃털로 상징되던 고전의 환상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상실과 욕망으로 뒤틀린 인간의 무의식을 서늘한 미장센으로 채워 넣으며 현대 발레의 새로운 정점을 증명했다.

 

이 작품의 서사는 유약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지그프리트 왕자를 전면에 내세워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납치된 기억이 무의식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왕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무대 위에 배치된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와 거대한 장막은 관객을 화려한 궁정이 아닌 잔혹 동화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으며, 장 콕토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무용수들의 신체 언어에서 드러난다. 마이요는 고전 발레의 상징인 부드러운 날갯짓을 박탈하고 무용수들의 손을 날카로운 야생의 손톱으로 형상화했다. 팔을 우아하게 젓는 대신 어깨 근육을 들썩이며 동물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는 무용수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생존의 본능을 온몸으로 토해낸다. 등 근육의 꿈틀거림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이들의 춤은 정제된 예술을 넘어 야생의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분출하며 시각적 배반을 선사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은 폐쇄 공포와 심리적 감옥을 시각화한 안무에서 기인한다. 마이요는 원작의 악마 로트바르트를 강력한 여성 캐릭터인 '밤의 여왕'으로 재구성하여 극 전체를 지배하게 했다. 차갑고 어두운 조명 아래 펼쳐지는 빠른 템포의 스텝과 급격한 방향 전환은 인물 간의 치열한 신경전을 묘사한다. 발레 특유의 공중 도약조차 이 작품에서는 자유로운 비상이 아니라 파국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변주된다.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또 다른 요소는 왕실의 은밀한 치정을 담은 드라마틱한 설정이다. 밤의 여왕이 왕과 부적절한 관계이며 그 사이에서 흑조가 태어났다는 파격적인 배경은 고전의 권선징악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다.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밀어내는 성적 긴장감과 권력욕이 뒤섞인 2인무는 신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치는 발소리는 클래식 선율조차 압도하며 무대를 권력의 각축장으로 만든다.

 

결국 왕자가 마주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정신적 파국이다. 왕자는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유년의 기억에 매달리지만, 밤의 여왕과 그녀의 수하들에 의해 끊임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관객은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백조와 흑조가 선악의 구도가 아닌 왕자의 결핍이 투영된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 심연의 공포를 건드리는 마이요의 'LAC'는 무대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이고 잔혹한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예산은 110%, 용지는 50%…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파문

선거는 끝났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일부 투표소에서 벌어진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 관리 체계 전반의 문제로 번지는 분위기다.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12곳과 강남구·광진구 각 1곳 등 모두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포기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개표 방송이 시작된 뒤에도 투표가 이어졌다.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막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항의도 있었다.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의 비판은 거세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했고, 국정조사 필요성도 제기했다. 여당내부에서도 선관위 책임론이 나왔다.논란이 커진 핵심은 투표용지 제작 방식이다. 선관위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체 유권자 수의 110% 수준에 해당하는 투표용지 제작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본투표용지는 송파구의 경우 유권자 수의 50% 수준만 인쇄됐다. 광진구와 강남구도 각각 50%, 55% 수준이었다.선관위는 사전투표율과 본투표율을 고려해 본투표용지를 최소 50% 이상 확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남는 투표용지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과거 잔여 투표용지를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뒤, 불필요한 여분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투표소에서는 수요 예측이 빗나갔고,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가 지연되거나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참정권 침해 소지가 있는 중대한 선거 관리 실패”라며, 이번 사태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선관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기표된 투표지를 바구니나 쇼핑백에 담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일었다. 이후에도 투표 현장 관리 부실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전문가들은 선관위의 조직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앙선관위원 9명 중 대부분이 비상임위원이고, 위원장을 현직 대법관이 겸직하는 관행 때문에 조직 장악력과 책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유로 외부 감시가 제한돼 내부 폐쇄성이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선관위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단순한 사과만으로는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예산 집행, 현장 대응 체계, 조직 책임 구조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선거 관리의 핵심은 공정성뿐 아니라 유권자가 제때, 안정적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신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