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아

"꽃 대신 기프티콘" 고물가가 바꾼 5월 풍경

 연중 최대 대목으로 꼽히는 5월이지만 서울 양재꽃시장의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어버이날이 지났음에도 진열대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카네이션 화분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상인들은 재고를 하나라도 더 털어내기 위해 30% 이상 가격을 낮춘 할인 문구를 내걸었다. 1만 5,000원에 팔리던 화분이 1만 원까지 떨어졌지만 시장을 찾는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 꽃은 신선도가 생명이라 보관 기간이 짧은 탓에 팔리지 않은 물량은 고스란히 상인들의 손실로 돌아오고 있다.

 

현장의 상인들은 스승의날 대목조차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5월 내내 시장 진입로가 마비될 정도로 붐볐으나, 최근에는 어버이날 당일 반짝 수요를 제외하면 평일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 이후 위축됐던 스승의날 꽃 선물 문화가 고물가 상황과 맞물리면서 아예 사라지는 분위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꽃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지 않는 비필수재로 인식되면서, 지갑을 닫는 순위에서 가장 먼저 고려 대상이 되고 있다.

 


소비 절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생산 원가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농가 난방비와 운송비 부담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꽃 재배에 필수적인 등유 가격은 리터당 1,600원을 돌파했고, 화물 경유 가격 역시 2,0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 여파로 수입 종자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농가와 상인들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직면했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로 경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꽃 가격은 통계적으로도 기록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양재꽃시장 기준 카네이션 주요 품목의 평균 경매가는 지난해보다 무려 152%나 폭등했다. 1년 전 4,000원대에 거래되던 품목이 올해는 1만 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부자재 가격 상승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꽃 포장에 쓰이는 비닐 가격조차 예전보다 60% 이상 뛰었지만, 손님이 끊길까 봐 판매가에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상인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물가 문제를 넘어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직접 대면해 선물을 전달하는 문화가 줄어든 자리를 모바일 기프티콘이나 실용적인 대체 상품이 차지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감성적인 만족보다는 실질적인 효용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화훼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었다는 평가다.

 

결국 화훼업계의 5월은 '성수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농가 인건비 상승과 에너지 비용 부담이라는 공급 측면의 악재와 소비 심리 위축이라는 수요 측면의 악재가 동시에 맞물린 상황이다. 상인들은 남은 기념일이라도 반등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치솟은 꽃값과 굳게 닫힌 소비자들의 마음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3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조차 올해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을 정도로 화훼 시장의 봄은 멀기만 하다.

 

'케데헌'이 바꾼 K-콘텐츠 지도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소셜 미디어를 매개체로 삼아 전 세계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팝과 드라마를 넘어 음식과 문화유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K-스토리텔링'이 새로운 소비 권력을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순한 물건 구매를 넘어 상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고유의 이야기가 담긴 상품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이다.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최근 열린 '서울포럼 2026' 특별 세션에서 전통문화 상품인 '뮷즈'의 성공 사례를 통해 콘텐츠의 힘을 증명했다. 과거에는 박물관 기념품 정도로 치부되던 굿즈들이 이제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이야기형 상품'으로 탈바꿈하며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다. 특히 전통 민화 속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배지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한국적 전통이 더 이상 지루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있는 문화 놀이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이러한 전통 굿즈의 열풍 뒤에는 지난해 6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파급력이 자리 잡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국적 요소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극 중 캐릭터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전통 문양 상품들이 마치 공식 굿즈처럼 소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잘 만든 영상 콘텐츠 하나가 박물관 전시품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어떻게 완전히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K-컬처 간의 시너지 효과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며 실질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SNS에 올린 미술품 사진이 전시 관람객 폭증으로 이어지거나, 블랙핑크 제니가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신라 금관 모티프 의상이 글로벌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식이다. 이제는 뷰티와 식품, 스포츠 브랜드들까지 자사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브랜드 스토리의 핵심 요소로 적극 도입하고 있다.한식 산업 역시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틱톡 챌린지와 K-팝 스타들의 먹방을 타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한국 음식'에 대한 글로벌 검색량은 이미 '일본 음식'을 추월했다. 특히 '케데헌' 공개 이후 작품 속 주인공들이 즐기던 김밥과 라면, 냉면 등에 대한 관심도가 급등하며 한식의 문화적 위상은 정점에 달했다.전문가들은 이제 K-팝이나 K-드라마 등 개별 분야의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여러 산업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가 특정 콘텐츠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음식과 뷰티,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이미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타 문화와의 융합에 유연한 한식의 사례처럼, 한국 문화 전반이 서로의 산업적 가치를 높여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향후 글로벌 시장 선점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