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쟁의 포화 속 베니스… 한국관은 '팔레스타인 연대' 광장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서 막을 올린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의 낭만 대신 국제 사회의 날 선 긴장감이 가득한 현장이 되었다. 행사장 곳곳에는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 전단이 흩날렸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울려 퍼졌다. 올해 비엔날레는 총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와 심사위원단의 집단 사퇴, 그리고 국가관 황금사자상 시상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국가'라는 시스템의 본질을 묻는 거대한 논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한국관은 오히려 '국가'를 덜 대표하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해외 비평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최빛나 예술감독이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균열과 미완의 상태를 거대 담론이 아닌 섬세한 관계망으로 풀어냈다. 미국 문화매체 옵저버는 이를 '살아 숨 쉬는 기념비'라고 평가했으며, 아트뉴스 역시 한국관을 올해 반드시 봐야 할 톱10 국가관 중 하나로 선정하며 공간이 주는 사유적 울림에 주목했다.

 


전시의 핵심은 최고은과 노혜리 작가를 주축으로 소설가 한강, 뮤지션 이랑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참여한 '펠로우십' 구조에 있다. 이들은 제주 4·3과 5·18, 그리고 최근의 탄핵 정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기억들을 여성의 연대와 돌봄, 씨앗의 생명력이라는 키워드로 엮어냈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설치 작품 '더 퓨너럴'은 한국관 내부의 오간자 설치물과 어우러지며, 국가라는 거대 요새 안에서 개인이 찾는 안식처인 둥지의 감각을 시각화했다.

 

이번 한국관 전시에서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인접한 일본관과의 경계를 허무는 협업 프로그램이었다. 최고은 작가의 설치 작품 '메르디앙'은 한국관 내부를 관통한 동파이프가 일본관의 울타리를 넘어 땅속으로 파고드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마치 막힌 혈관을 뚫는 침술처럼, 국가관이라는 폐쇄적인 경계를 은밀하게 흔드는 조용한 반란이다. 1995년 뒤늦게 건립되어 자르디니 끝자락에 숨겨지듯 자리 잡은 한국관의 지정학적 위치를 역설적으로 활용해 국가 간의 대화와 흐름을 제안한 것이다.

 


비엔날레 현장의 정치적 연대는 한국관 내부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시장 한편에는 팔레스타인 연대 메시지가 부착되었고, 최빛나 감독은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올해 비엔날레가 경쟁 중심의 황금사자상 대신 관람객 투표 방식인 '비지터 라이언스'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위계적 구조에 대한 반성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관은 화려한 시각적 스펙터클 대신 관람객이 옥상에 올라가 머물며 사유할 수 있는 광장을 제공함으로써 소비되는 전시가 아닌 공유되는 공간을 지향했다.

 

전쟁과 분열의 시대 속에서 열린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이 국가의 홍보 수단이 아닌, 인류 공통의 아픔을 치유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관이 보여준 낮은 목소리의 연대는 거창한 선언보다 강한 울림을 주며 자르디니의 지정학적 풍경을 새롭게 재편했다. 99개 국가관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한국관은 경쟁보다 관계를, 우승보다 해방을 상상하는 임시 시민 광장으로서 11월까지 베네치아의 물결 위를 항해할 예정이다.

 

'케데헌'이 바꾼 K-콘텐츠 지도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소셜 미디어를 매개체로 삼아 전 세계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팝과 드라마를 넘어 음식과 문화유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K-스토리텔링'이 새로운 소비 권력을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순한 물건 구매를 넘어 상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고유의 이야기가 담긴 상품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이다.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최근 열린 '서울포럼 2026' 특별 세션에서 전통문화 상품인 '뮷즈'의 성공 사례를 통해 콘텐츠의 힘을 증명했다. 과거에는 박물관 기념품 정도로 치부되던 굿즈들이 이제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이야기형 상품'으로 탈바꿈하며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다. 특히 전통 민화 속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배지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한국적 전통이 더 이상 지루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있는 문화 놀이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이러한 전통 굿즈의 열풍 뒤에는 지난해 6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파급력이 자리 잡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국적 요소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극 중 캐릭터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전통 문양 상품들이 마치 공식 굿즈처럼 소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잘 만든 영상 콘텐츠 하나가 박물관 전시품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어떻게 완전히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K-컬처 간의 시너지 효과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며 실질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SNS에 올린 미술품 사진이 전시 관람객 폭증으로 이어지거나, 블랙핑크 제니가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신라 금관 모티프 의상이 글로벌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식이다. 이제는 뷰티와 식품, 스포츠 브랜드들까지 자사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브랜드 스토리의 핵심 요소로 적극 도입하고 있다.한식 산업 역시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틱톡 챌린지와 K-팝 스타들의 먹방을 타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한국 음식'에 대한 글로벌 검색량은 이미 '일본 음식'을 추월했다. 특히 '케데헌' 공개 이후 작품 속 주인공들이 즐기던 김밥과 라면, 냉면 등에 대한 관심도가 급등하며 한식의 문화적 위상은 정점에 달했다.전문가들은 이제 K-팝이나 K-드라마 등 개별 분야의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여러 산업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가 특정 콘텐츠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음식과 뷰티,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이미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타 문화와의 융합에 유연한 한식의 사례처럼, 한국 문화 전반이 서로의 산업적 가치를 높여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향후 글로벌 시장 선점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