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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만휴정 야간 개장, 달빛 아래 '미스터 션샤인' 다리 걷자

 어둠이 짙게 깔린 경북 안동의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선명해지는 지점에서 만휴정을 마주하게 된다. 조선 중기 문신 김계행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이 작은 정자는 최근 야간 개장을 앞두고 은은한 조명을 입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 봄, 거대한 화마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위기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만휴정은 이제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생명력과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낮 동안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붐비던 외나무다리는 달빛 아래에서 비로소 본연의 호젓함을 되찾는다.

 

만휴정이라는 이름에는 '늦게 얻은 휴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름처럼 이곳은 인적 드문 깊은 산속에 자리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하얀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과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송암폭포, 그리고 정자를 감싸 안은 푸른 솔숲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특정 포토존의 명성을 넘어, 정자 뜰에 피어난 불두화와 고요한 밤의 공기가 어우러지는 순간이야말로 만휴정의 진정한 매력이 드러나는 때다.

 


만휴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응계 옥고 선생을 기리는 묵계서원이 자리한다. 담장 너머로만 엿봐야 하는 다른 고택들과 달리, 이곳은 누구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열린 서원'으로 운영되어 방문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진덕문과 읍청루를 지나 강당인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으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각도와 계절의 색채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젖은 흙냄새와 함께 서원의 운치가 한층 짙어져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묵계서원의 사계절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봄에는 진분홍빛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나고, 여름이면 붉은 배롱나무꽃이 뜰을 수놓는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잎이 황금빛 카펫을 깔아주며, 겨울에는 흰 눈이 내려앉아 세상의 소음을 지워버린다. 서원 왼쪽의 주사는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데, 'ㅁ'자형 건물 구조 덕분에 대청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붕 위를 오가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조차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

 


서원 인근의 보백당 종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묵계서원과 종택에서는 고택 숙박 체험이 가능해 안동의 밤을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숙박하지 않더라도 앞뜰을 거닐다 보면 마을 어르신들이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드시는 정겨운 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여름의 배롱나무와 가을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종택의 오랜 역사를 묵묵히 증명하며 방문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휴정에서 시작해 묵계서원과 보백당 종택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번잡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대청마루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곳은 안동이 간직한 고즈넉한 아름다움의 정수다. 화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만휴정의 밤은, 5월 중순 정식 개장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달빛 아래의 휴식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안 킬러' 산토스, 최두호에 지고 매너도 패배

 종합격투기 UFC 무대에서 한국의 최두호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브라질의 다니엘 산토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며 고개를 숙였다. 산토스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기 중 입은 부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몸짓과 발언을 내뱉어 거센 비난을 받았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는 결국 한글로 작성된 사과문을 올리며 진화에 나섰으나, 격투기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사건의 발단은 산토스가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간 뒤 올린 영상물이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최두호와의 경기에서 입은 눈 부위와 귀의 상처를 보여주던 중, 두 눈이 다 부어올라 감긴 자신의 모습을 가리켜 이제 한국인이 된 것 같다는 실언을 내뱉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양 검지 손가락으로 눈 가장자리를 옆으로 찢는 동작을 취했는데, 이는 서구권에서 동양인의 외모를 비하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인종차별 제스처인 '슬랜트 아이'에 해당한다.해당 영상이 확산하며 한국 팬들을 포함한 전 세계 네티즌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산토스는 급히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후 그는 사과문을 통해 한국 국민과 문화에 상처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자신의 부족한 표현력으로 인해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한국 팬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매일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다짐을 덧붙였으나, 인종차별에 민감한 스포츠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아이러니하게도 산토스는 그동안 '코리안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한국 선수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파이터다. 하지만 지난 1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최두호와의 맞대결에서는 2라운드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다 결국 TKO로 무너졌다. 최두호의 정교한 타격과 강력한 바디 샷 연타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산토스는 자신의 프로 경력 중 처음으로 TKO 패배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게 됐다.반면 산토스를 꺾은 최두호는 이번 승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 1년 5개월 만의 복귀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최두호는 무려 10년 만에 UFC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페더급의 강자로 다시 우뚝 섰다. 경기 내내 압도적인 기량으로 상대를 몰아붙인 끝에 얻어낸 결과여서 팬들의 환호는 더욱 컸지만, 패배한 상대의 몰상식한 행동이 전해지며 승리의 기쁨에 오점이 남게 됐다.스포츠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프로 선수가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행위를 한 것은 엄중한 사안이며, UFC 측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나 징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토스가 한글 사과문으로 용서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과 매너 모두에서 완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