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29년 전 한글 점자 교재…보존 처리로 새 생명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특수교육의 여명이 밝아오던 시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전문가들의 정교한 복원 작업을 거쳐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산하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던 국가등록문화유산 '로제타 홀 한글점자 교재'에 대한 과학적인 보존 처리 공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복원 작업은 복권기금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진행되었으며, 훼손된 문화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교재는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와 의료 및 교육 봉사에 헌신했던 미국 출신의 의료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이 1897년에 직접 고안하여 만든 것이다. 그녀는 당시 미국에서 맹인들을 위해 널리 쓰이던 4점식 뉴욕 점자 체계를 조선의 고유 문자인 한글에 접목하는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최초의 한글 점자를 탄생시켰다. 로제타 홀은 평양여맹학교 등을 세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 교재는 배재학당에서 사용하던 한글 학습서인 '초학언문'의 내용을 점자로 번역하여 수록한 것으로 한국 특수교육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로제타 홀이 개발한 이 4점식 한글 점자 체계는 이후 수십 년간 조선의 맹인 교육 현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현대 한글 점자의 근간이 되는 6점식 점자 체계인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반포하기 전까지, 약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창구로 활용되었다. 가로 13.4센티미터, 세로 21.3센티미터의 아담한 크기로 제작된 이 책은 대량 인쇄된 것이 아니라 기름을 먹인 두꺼운 종이 위에 일일이 바늘로 구멍을 뚫어 수작업으로 완성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본 교재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견디는 동안 교재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보존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책의 겉표지에는 로제타 홀이 직접 쓴 친필 메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으나, 책을 엮고 있던 제본 끈은 이미 삭아서 끊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또한 종이를 보호하기 위해 발라두었던 기름 성분이 산화되면서 지면 전체가 짙은 갈색으로 변색되었고, 여러 번 접히고 꺾인 자국을 따라 종이가 심하게 찢어지거나 바스러지는 등 물리적인 손상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보존과학센터 연구진은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앞서 교재를 구성하고 있는 재질에 대한 정밀한 과학적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점자가 새겨진 본문은 질긴 닥나무 껍질 안쪽의 섬유질인 인피섬유로 만든 전통 한지를 최소 두 겹 이상 덧대어 만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뾰족한 바늘로 종이에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종이가 찢어지지 않고 점자의 입체적인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반면 표지 부분은 나무를 기계로 갈아서 만든 쇄목펄프 재질의 종이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러한 재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훼손된 본문과 표지를 조심스럽게 분리한 뒤, 부드러운 붓과 특수 스펀지를 이용해 표면에 묻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세척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찢어지거나 결실된 부분은 보존성이 뛰어난 닥나무 섬유 종이를 원래의 색상과 유사하게 염색하여 덧대어 보강했다. 마지막으로 책을 엮었던 구멍의 흔적을 꼼꼼히 추적하여 후대에 임의로 묶어둔 끈을 제거하고 원래의 제본 방식에 가장 가깝게 다시 책을 엮어내는 것으로 모든 복원 절차를 마쳤다. 새 단장을 마친 이 교재는 조만간 원래 소장처인 대구대학교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일반 대중에게 전시될 예정이다.

 

현대차·쏘카 연합군, 4300조 자율주행 시장 정조준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행보가 '기술 순혈주의'를 탈피해 전방위적인 협력 체계로 급선회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최근 타운홀미팅에서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앞선 기술력을 인정하며, 필요하다면 전 세계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배우겠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독자 개발에만 매몰되지 않고 엔비디아 등 글로벌 AI 거물들과 손잡고 똑똑한 자율주행 두뇌를 빠르게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현대차의 이러한 절치부심은 광주광역시라는 거대한 시험 무대에서 구체화될 예정이다. 광주시는 최근 시 전체 도로를 자율주행 실증구역으로 지정하며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시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현대차는 이곳에 하반기 중 아이오닉5 기반의 자율주행차 200대를 전격 투입한다. 카메라와 레이더를 결합한 고도화된 센서 체계를 통해 실제 도심 데이터를 대량으로 확보함으로써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광주를 달릴 실증 차량에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문 기업 포티투닷이 개발한 '아트리아(Atria) AI'가 탑재된다. 과거 테슬라 등 선두 주자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현대차는 이번 대규모 실증 사업을 통해 축적될 주행 영상과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엔비디아 출신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최신 자율주행 모델을 채용하는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모빌리티 플랫폼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카셰어링 업체 쏘카는 하루 평균 110만 km에 달하는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무기로 자율주행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쏘카는 게임사 크래프톤과 손잡고 합작법인 '에이펙스 모빌리티'를 출범시켜 데이터 기반의 자율주행 상용화 속도를 높일 예정이다.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데이터 자산을 보유한 플랫폼 기업들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자율주행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하지만 장밋빛 전망 뒤에는 해결해야 할 고질적인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세계 5위권으로 평가받지만, 실제 시장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부처별로 흩어진 규제와 지원 조직을 통합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국토부와 과기정통부 등 여러 부처가 표준 방식을 두고 이견을 보이거나 법령 간 연계성이 부족해 의사 결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자문위원회 수준을 넘어 각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고 개선을 명령할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가 겹겹이 쌓인 상황에서는 선진국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현대차가 기술의 문을 열고 지자체가 도로의 문을 열었지만, 결국 정부가 규제의 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리해주느냐가 한국 자율주행 산업의 성패를 가를 마지막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