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벽돌폰, 30년 만에 AI 비서가 되다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는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기술적 성취는 지난 30년간 무전기만 한 '벽돌폰'을 손안의 인공지능(AI) 비서로 바꾸어 놓으며, 한국이 모바일 강국으로 우뚝 서는 기틀을 마련했다.

 

CDMA 이전의 1세대 아날로그 시대, 휴대폰은 극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1988년 출시된 삼성의 첫 휴대폰 'SH-100'은 700g이 넘는 무게 탓에 '벽돌'이라 불렸고, 가격은 자동차 한 대와 맞먹었다. 하지만 CDMA 기술이 통화 품질은 물론 단말기 소형화를 이끌면서 휴대폰 대중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모토로라 '스타택'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폴더형 디자인과 88g의 혁신적인 무게를 앞세운 스타택은 전 세계적으로 6000만 대 이상 팔려나가며 시장을 휩쓸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스타택의 '딸깍' 소리는 당시 성공한 전문직의 상징과도 같았다.

 

외산폰의 거센 공세 속에서 삼성전자는 '애니콜' 브랜드로 반격에 나섰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구호로 품질을 인정받은 뒤, 2000년대 들어 '조약돌폰', '벤츠폰' 등 디자인 혁신을 앞세운 제품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텐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 휴대폰은 통신 기기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휴대폰은 카메라, MP3, DMB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집약하며 '보는 폰'으로 진화했다. LG전자의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 프리미엄 모델의 성공은 한국 휴대폰 산업의 르네상스를 증명했다. 그러나 2009년 말, 아이폰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터치스크린과 '앱 생태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피처폰 시장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 시리즈로 위기에 정면 돌파하며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고, S펜을 탑재한 '갤럭시 노트'로 '패블릿' 시장을 개척하며 마침내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휴대폰은 실시간 통역, 지능형 사진 편집 등을 기기 자체에서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를 품고 '생각하는 폰'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크라 유학생, 춘향미 됐다

약 100년 역사를 이어온 춘향선발대회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이 본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전통문화 축제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무대에 외국인 참가자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춘향제가 지닌 의미와 외연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전북 남원시에 따르면,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리나(23)는 지난달 30일 남원 광한루원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96회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미’로 선정됐다. 외국인 참가가 본격화된 이후 주요 수상권에 오른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리나는 수상 다음 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벅찬 소감을 전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100년에 가까운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미’에 선발돼 더욱 뜻깊다”며 “배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진정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적었다. 그의 수상 소감은 온라인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대회의 변화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이번 대회에서는 ‘진’에 김하연(22), ‘선’에 이소은(27), ‘정’에 김도현(19), ‘숙’에 김서원(22), ‘현’에 이현아(20)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수상자들은 무대 매너와 표현력, 개성, 전통적 이미지 등을 종합 평가받아 선발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정’에 오른 김도현은 가수 김다현의 언니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본선 무대에서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선보이며 관객 호응을 얻었다. 춘향을 소재로 한 대회의 정체성을 전통 공연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무대로 평가됐다.춘향선발대회는 춘향제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오랜 기간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행사다. 배우 최란, 박지영, 오정해, 윤손하 등 여러 연예인을 배출하며 상징성을 쌓아왔다. 최근에는 시대 변화에 맞춰 참가 문호를 넓히고 형식 변화를 모색하면서, 전통 축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남원시는 2024년부터 외국인 참가를 허용하고 대회 명칭을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로 바꿨다. 지난해에는 에스토니아 출신 유학생이 ‘춘향 현’에 선정됐고, 올해는 우크라이나 출신 참가자가 ‘미’에 오르면서 국제화 흐름이 한층 선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권덕철 춘향제전위원장은 대회의 전통성과 국제성을 강조하면서, 춘향선발대회를 춘향제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전통과 상징의 무대로 여겨졌던 춘향선발대회가 이제는 국적과 배경을 넘어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무대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수상 결과는 그 흐름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