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쓰레기에서 예술로..금속 직조 조각의 신비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거장, 가나 출신의 설치미술가 엘 아나추이의 신작이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화이트 큐브 서울은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예술적 영감을 선사할 엘 아나추이의 개인전 루보(LuwVor)를 오는 4월 18일까지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여는 신작들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공개하는 자리로, 서울을 시작으로 홍콩과 아트바젤 홍콩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의 서막을 알리는 무대다. SNS와 미술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거장의 작품을 직접 눈에 담으려는 관람객들의 인증샷 예고가 쏟아지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의 현대 커미션으로 선보였던 비하인드 더 레드 문(Behind the Red Moon)과 상하이 푸동미술관 개인전 이후 처음으로 발표되는 신작이라는 점에 있다. 엘 아나추이는 금속과 점토, 나무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재료를 활용해 물질의 변형과 깊은 문화적 서사를 탐구해온 작가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그의 시그니처 작업인 병뚜껑 시리즈는 버려진 금속 폐기물을 마치 천을 짜듯 정교하게 연결해 거대한 조각으로 탈바꿈시키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아왔다.

 


엘 아나추이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비고정적 형태(Non-fixed form)다. 그는 조각을 단단하고 고정된 물체로 보지 않는다. 대신 전시되는 장소와 설치되는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잠정적인 상태로 이해한다. 이러한 철학은 1970년대 후반 선보인 깨진 항아리(Broken Pots) 연작에서부터 싹텄다. 점토 파편을 다시 이어 붙여 만든 이 작업은 완벽한 복원을 목표로 하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작가는 깨뜨리는 행위가 단순히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재탄생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해왔다. 이는 과거의 소중한 가치를 미래의 자원으로 삼는 아칸 문화의 개념인 산코파(Sankofa)와도 깊이 맞닿아 있어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 청담동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신작들은 약 30년 동안 이어온 병뚜껑 작업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층 더 확장된 조형미를 자랑한다. 수천 개의 금속 병뚜껑을 하나하나 절단하고 변형한 뒤 얇은 구리선으로 엮어 완성한 이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병뚜껑들이 서로 맞물린 접합 구조가 표면 위로 가감 없이 드러나면서, 차가운 금속 물질이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으로 구축되어가는 숭고한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는 조각의 양면성이다. 이번 신작들은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양쪽 면이 대등한 관계를 이룬다. 한쪽 면은 은빛 단색의 평면이 세련된 도시적 감성을 자아내는 반면, 반대쪽 면은 흑색과 갈색, 황색, 그리고 산화된 적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마치 아프리카의 비옥한 토양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색채를 뿜어낸다. 표면 곳곳에 뚫린 틈과 구멍 사이로 작품 내부의 복잡한 구조와 전시 공간이 투과되어 보이는데, 이는 작품이 벽에 박제된 대상이 아니라 공간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관람객들은 정해진 각도 없이 작품 주위를 돌며 시시각각 변하는 금속의 질감과 빛의 반사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서울 전시의 열기는 곧바로 홍콩으로 이어진다. 오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아트 바젤 홍콩에서도 이번 연작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특히 공중에 설치되어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연출을 선보일 홍콩 전시 작품은 한쪽의 짙은 적갈색과 반대편의 은빛 금속 표면이 대비를 이루며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시각적 충격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쓰레기에 불과했던 병뚜껑이 거장의 손길을 거쳐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은 현대 미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보여준다.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인류 공통의 역사와 서사를 엮어내는 엘 아나추이의 작업은 환경 오염과 자원 순환이 화두인 오늘날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화이트 큐브 서울 전시를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물질이 어떻게 거대한 감동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술과 노동,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황홀하게 교차하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질감의 축제다. 청담동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아프리카 거장의 마법 같은 신작 전시는 올봄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장 완벽한 문화적 사치를 선사할 것이다.

 

유시민의 ABC론, 민주당 내전의 서막을 열다

 총선 이후 압도적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내부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가 당의 지지층을 A, B, C 세 그룹으로 분류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분류법은 의도와 무관하게 지지층을 갈라치는 도구로 변질되며, 당내에 잠재해 있던 갈등의 뇌관을 건드렸다.유 작가의 분류에 따르면 A그룹은 가치를 중시하는 핵심 지지층, B그룹은 이익을 추구하며 친명을 자처하는 집단, C그룹은 가치와 이익을 모두 고려하는 층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분이 특정 그룹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이는 곧바로 ‘누가 진정한 이재명의 사람인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하며 파장을 키웠다.현재 민주당 내부의 갈등은 과거의 ‘친문 대 비문’이나 ‘친명 대 비명’ 구도와는 다르다. 비주류가 대부분 정리된 상황에서 발생한 이 현상은 ‘본류 의식’과 ‘직계 강조’의 충돌로 해석될 수 있다. ‘본류’는 노무현 정부 이후 문재인, 이재명에 이르기까지 당의 주류를 형성해 온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인식을 가졌다. 반면 ‘직계’는 현직 대통령인 이재명과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내세우며 새로운 중심임을 주장한다.이러한 ‘본류’의 흐름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결집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당시 ‘주인 없던’ 민주당을 문재인 중심의 정당으로 만들었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의 정체성을 만들고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내 비주류를 정리하며 단일대오를 구축하자마자 내부에서 새로운 분화가 시작됐다. 외부의 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구성원들끼리의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지지층의 분열은 곧바로 정치권의 분열로 이어진다.이 싸움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삶이나 정책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다당제 개혁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당내 권력 투쟁에만 에너지가 소모된다. 결국 정치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만 대변하게 되고, 선거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수많은 중도층 유권자는 소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