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태양광부터 AI 서버까지, 첨단 산업의 심장 '은' 몸값 치솟는다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은이 현대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로 재평가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던 은은 대항해시대를 거쳐 화폐 경제의 근간인 은본위제를 지탱해왔다. 19세기 말 금본위제에 자리를 내주며 한때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으나, 최근 인공지능(AI)과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은의 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특히 은은 금속 중 열전도율과 전기 전도성이 가장 뛰어나 고성능 전자부품과 데이터센터 전선의 핵심 소재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은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동력은 AI 인프라 확충과 태양광 발전 수요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사양 서버와 스위치, 커넥터 등에는 신뢰도가 낮은 구리 대신 은이 대거 투입된다. 또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태양광 패널 제작에도 막대한 양의 은이 소모되면서 산업용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반도체 후공정에서도 구리 와이어보다 안정성이 높은 은 와이어의 채택 비중이 늘어나는 등, 현대 기술 문명의 정점에 있는 산업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은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와 달리 공급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은은 독립적인 광산에서 채굴되기보다 구리나 아연, 금을 캐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생산되는 경우가 70%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은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새로운 은광을 발견하더라도 실제 생산까지는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실버 인스티튜트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은 공급 부족량은 8억 2,000만 트로이온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전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임을 시사한다.

 

여기에 국제 정치의 불안정성이 기름을 붓고 있다. 세계 최대 은 소비국이자 주요 생산국인 중국은 올해부터 은 수출 라이선스 허가제를 도입하며 사실상 자원 무기화에 나섰다. 미국 역시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논란과 금리 인하 압박 속에 달러 가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안전자산으로서 은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미 정부가 은을 전략 광물로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은이 단순한 원자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자산으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글로벌 은 시장의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도 두드러진다. 세계 최대 수준의 은 생산 능력을 보유한 고려아연은 연간 2,000~2,500톤의 은을 추출하며 글로벌 톱3 생산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광산에서 직접 캐지 않고 제련 과정에서 은을 뽑아내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은값 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전 세계적으로 은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내에 세계적인 수준의 공급망을 갖춘 기업이 있다는 사실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은의 가치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거대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생산 탄력성이 낮은 상황에서 첨단 산업의 수요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정학적 갈등은 공급망을 더욱 옥죄고 있다. 역사적으로 은은 패권 경쟁과 통화 체제의 변화 속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왔으며, 이제는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 병기로 거듭났다. 전문가들은 은이 전략 광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함에 따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격 우상향 곡선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국제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91만 살 군산오름과 6천 살 성산일출봉의 비밀

 제주를 상징하는 368개의 오름 중 90곳의 나이가 처음으로 공개되며 화산섬 제주의 생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최신 연대측정 기법을 통해 각기 다른 오름들의 형성 시기를 규명, 제주 화산활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 이번 연구는 제주의 과거를 넘어 미래의 화산활동 가능성을 예측하는 과학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연구 결과, 가장 나이가 많은 오름은 약 91만 7천 년 전에 형성된 군산오름으로 밝혀졌다. 반면, 가장 젊은 오름은 한라산 정상부에 위치한 돌오름으로, 불과 2천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은 약 6천 년, 백록담은 약 1만 6천 년 전에 형성되는 등 오름마다 적게는 수천 년에서 많게는 수십만 년까지 큰 시간적 편차를 보였다.이처럼 오름의 나이가 제각각인 이유는 오름이 단기간의 화산 분출로 만들어지는 '단성화산'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몇 주, 길어도 수년에 걸친 한 번의 활동으로 하나의 오름이 형성되므로, 각각의 오름은 특정 시기의 화산활동을 기록한 타임캡슐과도 같다. 따라서 개별 오름의 정확한 형성 시기를 아는 것은 제주도 전체의 화산활동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과거 오름의 연대측정 연구는 기술적 한계와 높은 비용으로 인해 더디게 진행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아르곤(Ar) 연대측정법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광여기루미네선스(OSL) 등 더욱 정밀한 기법들이 도입되면서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다. 세계유산본부는 이러한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오름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이번에 공개된 90개 오름의 연대 자료는 시작에 불과하다. 세계유산본부는 축적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 연구의 깊이를 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제주 화산활동 연구를 활성화하고, 학술적 활용도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세계유산본부는 이번 성과를 발판 삼아 2028년까지 최대 200개 오름의 나이를 추가로 밝혀낼 예정이다. 또한, 오름의 분출물 분포, 고토양 분석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며 제주 화산섬의 비밀을 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