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만지지 마세요" 금기 깼더니 50만 명 손때가 예술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매일 수천 장의 사진을 소비하지만 정작 무언가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하얀 코끼리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엄정순 작가가 26일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보푸라기-촉각적 사건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첫마디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졌다고 선언했다. 너무 본 게 많아서 오히려 감각을 잃어버린 시대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그림 감상을 넘어 우리 몸의 감각을 깨우는 거대한 실험실과 같다. 그 시작은 지난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화제를 모았던 코 없는 코끼리에서 출발한다. 당시 전시장에서는 미술관의 성역과도 같았던 만지지 마세요라는 규칙이 깨졌다. 무려 5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코끼리 작품을 직접 만지고 쓰다듬었다. 그 결과 부드러운 양모 표면에는 수많은 보푸라기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작품을 망치는 제거 대상처럼 보였던 이 보푸라기들이 작가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엄 작가는 이 보푸라기를 단순한 먼지나 찌꺼기가 아닌 50만 명의 체온이라고 정의했다. 수많은 사람의 손길과 마찰 그리고 그 순간의 온도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촉각적 사건이 됐다. 그는 이를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방향이 뒤틀리는 귀중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눈으로만 즐기던 예술이 손끝을 통해 관계의 예술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엄정순 작가는 오랫동안 시각장애인 미술 교육 프로젝트를 이끌며 보는 행위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그는 우리가 눈을 뜨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시각은 가장 불안정한 감각임에도 현대인은 지나치게 눈에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천 권이 넘는 점자책은 이러한 시각 중심주의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바람이 불면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눈으로는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이 텍스트들은 손끝으로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감각 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았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는 능숙하지만 촉각이나 후각처럼 대상을 직접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는 근접 감각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촉각을 다른 감각보다 우위에 두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평등하게 작동하는 촉각의 민주화를 제안했다. 시각에만 쏠린 감각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언어의 선택이다. 국제적인 작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세련된 영어 제목 대신 엄 작가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템포럴 스페이스 같은 영어 표현을 쓰면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일부러 한국어를 고집했다. 케이컬처가 세계를 휩쓰는 시대인 만큼 이제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당당한 포부다. 이는 감각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이 언어의 위계를 깨는 작업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학고재 전시장에는 관객의 접촉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조각과 회화 작품들이 가득하다. 보푸라기라는 미세한 존재를 통해 거대한 담론을 끌어낸 작가의 내공이 돋보인다. 이미지를 과잉 소비하느라 정작 마음의 감각은 빈곤해진 우리에게 이번 전시는 무엇으로 세계를 만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오는 3월 28일까지 이어지며 별도의 관람료 없이 누구나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50만 명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따뜻한 보푸라기의 온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 삼청동 나들이를 계획해보는 것이 어떨까. 정보가 아닌 감각으로 채워지는 특별한 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보수 텃밭 대구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TK) 지역의 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유력 주자들을 연이어 공천 배제(컷오프)하면서 당이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공관위의 결정에 후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면서, 공천 파동은 당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악재로 번지는 모양새다.가장 큰 파열음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나왔다. 유력 후보로 꼽히던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컷오프 명단에 포함되자 즉각 반발했다. 주 의원은 이번 결정이 부당하다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당내 투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공관위 결정에 대한 불복을 공식화한 것이다.이진숙 전 위원장 역시 기자회견을 열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자신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컷오프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재명이 자르고 싶었던 이진숙을 국민의힘이 잘랐다"는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공관위가 결정을 재고하지 않을 경우 대구 시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번 사태는 단순히 컷오프 당사자들의 반발에 그치지 않고 당내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구시장 출신인 권영진 의원은 장동혁 대표가 '시민 공천'을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공관위 부위원장인 정희용 사무총장은 이정현 위원장의 결정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나왔고, 이후 최고위원회의에도 불참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을 드러냈다.경북 포항시장 선거 상황도 심상치 않다. 10명이 넘는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박승호 전 포항시장, 김병욱 전 의원 등 유력 주자들이 대거 컷오프되자 재심을 신청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에서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하며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나섰다.하지만 당 지도부는 공관위 결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고위원회는 경선 구도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사실상 공관위의 결정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내부 갈등과 분열이 계속될 경우, 보수 표심이 분산되어 야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팽배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