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은행들, 이제 함부로 점포 못 없앤다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속도를 내던 은행권의 점포 폐쇄 움직임에 강력한 제동이 걸린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던 점포 폐쇄 절차에 객관적인 기준을 도입하고, 특히 비수도권 지역의 점포를 없앨 경우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디지털 금융에서 소외된 계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직접 개입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은행 점포는 가파른 속도로 자취를 감췄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전국에서 1000개가 넘는 은행 점포가 사라졌으며, 이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융 접근성 악화로 이어졌다. 특히 서울과 지방의 점포 수 격차는 극심해, 일부 지역 주민들은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평균 5km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왔다.

 


문제는 은행들이 점포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자체 기준에 따라 사전영향평가를 진행했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인근 지점과 통폐합할 경우에는 이러한 평가 절차마저 생략할 수 있는 허점이 존재해, 은행들은 이 통로를 이용해 손쉽게 점포 수를 줄여왔다.

 

앞으로 은행들은 점포를 폐쇄하기 전, 훨씬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국은 인근 점포와의 실제 이동 거리가 10km를 넘고, 대면 거래 의존도가 높은 고객이 많은 점포는 폐쇄의 영향도가 높다고 평가하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점포 폐쇄 전 최소 1개월 이상, 일부 지역은 2개월 이상 고객 의견을 의무적으로 수렴해야 하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후 평가도 거쳐야 한다.

 


단순히 절차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페널티도 도입된다. 금융당국은 각 지자체가 금고 은행을 선정할 때 활용하는 ‘지역재투자평가’에서 점포 폐쇄에 대한 감점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광역시 외 지역의 점포를 폐쇄할 경우 더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는 은행들이 지방 점포를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압박 카드가 될 전망이다.

 

이 외에도 금융감독원은 매년 실시하는 금융소비자보호 실태 평가에 점포 유지 노력을 평가하는 지표를 추가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다. 일방적인 효율성만 추구하던 은행권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금융 서비스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각적인 조치가 본격화되고 있다.

 

11년 만에… 대형마트 ‘심야 족쇄’ 풀린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대형마트의 심야 온라인 배송을 가로막아온 규제를 혁파하기로 했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오히려 쿠팡 같은 이커머스 공룡에게만 유리한 ‘불공정 운동장’을 만들었다는 판단에서다.4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청은 실무 협의회를 통해 현행 유통법의 영업시간 제한 조항에 예외를 두는 개정안을 논의했다. 핵심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영업 제한 시간 중에도 ‘전자상거래를 위한 배송 행위’는 허용하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도 물류 거점을 활용해 전국 단위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본격화할 수 있게 된다.이번 규제 완화의 배경에는 ‘쿠팡 사태’로 촉발된 이커머스 독점 체제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규제 완화에 보수적이었으나,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국회 경시 태도 등이 겹치며 기류가 급변했다.민주당 관계자는 “쿠팡이 미국 정부에 구명 로비를 벌이는 등 국내 소비자 보호 체계를 우회하려 한다”며 “실질적인 견제를 위해서는 오프라인 기반 유통사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실제로 2013년 도입된 대형마트 영업 제한은 전통시장을 살리기보다 쿠팡의 폭발적 성장을 돕는 반사이익으로 돌아갔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쿠팡의 연 매출(41조 3000억 원)은 국내 대형마트 전체 판매액(37조 1000억 원)을 이미 추월했다. 규제가 묶인 사이 시장의 주도권이 완전히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간 셈이다.유통업계는 일단 환영하면서도 “너무 늦었다”는 반응이다. 이미 쿠팡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새벽배송 허용만으로 판도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 인프라 격차를 줄이기엔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소상공인과의 갈등 관리도 숙제다. 전국상인연합회는 “구매 수요가 대형 업체로 완전히 쏠려 지역 상권이 붕괴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정은 ‘의무휴업일 지정’ 조항은 그대로 유지하되, 배송 업무에 대해서만 예외를 두는 절충안을 택했다.국민의힘 역시 규제 전면 폐지를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여서 향후 국회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여야 간 속도 조절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번 유통법 개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소비자 편익 증진으로 이어질지 유통업계 전체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