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귀여워서 기절? 이건희 회장이 아낀 조선판 피규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귀한 보물들을 이제 대구의 한 정원에서 편안하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야외 전시장 모두의 정원을 조성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박물관 뒤편 산책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로 연일 북적이고 있다. 휑했던 산책로가 대한민국 최고의 수집가가 기증한 석조물 257점과 만나면서 대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 회장의 기증품 2만 1천여 점 중 석조물만 835점에 달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량인 257점이 바로 이곳 대구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국립청주박물관이나 제주박물관 등 전국 각지로 흩어진 기증품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석조물은 워낙 크고 무게가 상당해 운반과 전시에 제약이 많지만, 국립대구박물관은 넓고 쾌적한 야외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이 많은 보물을 한눈에 펼쳐 보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이름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권영우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개인이 귀하게 수집한 문화유산을 이제는 모두가 함께 감상하며 그 아름다움을 향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기증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시민들의 일상 속 정원으로 녹여낸 셈이다. 박물관 개관 30주년이었던 2024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2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성된 이 공간은 범어공원으로 이어지는 숲길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정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각양각색의 동자석과 석인상들이다. 해담길, 월담길, 별담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무덤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던 이 석상들은 본래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통일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관습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한국만의 독특한 해학과 정서가 담긴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언뜻 보면 투박하고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 하나도 같은 얼굴이 없다. 어떤 석인상은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짓고 있고, 어떤 동자석은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처럼 과장된 눈과 입을 가져 귀여운 느낌마저 준다. 당시 관리들이 입던 복식인 금관조복을 입고 홀을 든 모습 등을 통해 제작 연대를 추적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물관 측은 관람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석상들의 위치와 방향, 높이를 세심하게 조절해 배치했다. 덕분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표정의 석상과 마주하는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산책로 구석구석에는 석인상 외에도 고려 시대의 석조여래좌상과 오층석탑, 삼층석탑 등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유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산책로 입구에 있는 효자 이종형 정려문과 박물관 마당에 우뚝 솟은 6m 높이의 오층석탑은 놓쳐서는 안 될 핵심 관람 포인트다. 도심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돌의 온기를 느끼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야외에 이렇게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혹시나 분실 위험은 없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박물관 측의 보안은 철저하다. 권 학예연구사는 석인상들을 단순히 땅에 심어둔 것이 아니라 지면 아래에서 금속 와이어로 일일이 연결해 단단히 고정해두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번쩍 들어 가져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365일 24시간 내내 CCTV 관제가 이뤄지고 있으며, 오후 6시 30분 이후에는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야외 산책이 끝났다면 실내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현재 박물관 내부에서는 모두의 정원과 연계된 알록달록 동자상 전시가 한창이다. 어린이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목조 동자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석인상 모형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개인의 안목과 열정으로 모인 보물들이 국가에 기증되어 시민들의 쉼터로 돌아온 모두의 정원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기증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이번 주말,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대구의 비밀 정원을 거닐어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선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구의 숲속에서 조용히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자 스펙’ 학벌, 언제까지 발목 잡을 건가

 채용 시장에서 지원자의 출신학교를 평가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 시민단체 교육의봄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수치로 보여준다. 인사담당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채용 과정에서 학벌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취업 준비생이 느끼는 ‘학벌의 벽’이 단순한 체감이 아님을 증명한다.학벌 정보는 주로 서류 전형이라는 채용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부터 강력한 필터로 작동한다. 인사담당자들은 출신학교를 통해 지원자의 학문적 성취도 자체보다는 ‘업무 수행 태도에서의 책임감과 성실성’이나 ‘빠른 학습 능력’ 등을 추론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학벌이 개인의 역량을 증명하는 객관적 지표가 아닌, 태도를 가늠하는 손쉬운 대리 지표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흥미로운 지점은 학벌을 평가하는 태도에서 세대 간의 뚜렷한 인식 차이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인사 경력이 10년 이상인 고참급 관리자일수록 출신학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3년 미만의 저연차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회사 방침과 무관하게 학벌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채용 문화의 변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실제로 변화의 요구는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전체 응답자의 70% 이상이 출신학교 정보를 보지 않고도 지원자의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마련된다면 이를 적극 도입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학벌 중심의 낡은 채용 관행이 비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실질적인 제도로 이어지기까지는 한계가 명확하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이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채용 과정에서부터 학력 정보를 요구하거나 활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채용절차 공정화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교육계와 시민사회는 출신학교가 개인의 순수한 능력보다는 가정 배경이나 사교육 접근성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결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를 채용의 잣대로 삼는 것은 불공정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3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한 국민대회가 열리는 등, 출신학교 차별을 법적으로 근절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