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산골 오지에서 동해 바다까지, 기차로 꿰는 대한민국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일부러 느림을 선택하는 여행이 있다. 경북 북부의 산악 지대에서 출발해 강원도 태백의 협곡을 지나 동해의 푸른 바다에 닿는 영동선·강릉선 기차 여행은 속도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깊은 사색과 아날로그적 낭만을 선물한다. 서울에서 시작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노선이 하트 모양을 닮아 '하트-라인'이라 불리는 이 코스는 잊혀가는 우리네 삶의 풍경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본격적인 협곡 여행에 앞서, 여정의 첫 단추는 맛의 고장 영주에서 꿰어진다. '선비의 고장'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영주는 내륙 깊숙한 곳의 탄탄한 식문화를 자랑하는 미식의 도시다. 소백산 자락에서 자란 굵은 부석태로 끓여낸 구수한 청국장과 육즙 가득한 영주 한우 숯불구이는 도시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느긋한 위로를 건넨다. 100년의 시간을 간직한 근대문화거리와 철도 관사촌은 잊힌 시간 속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이 여행의 백미는 단연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 구간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깊은 산 속으로 들어서는 열차의 창밖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기차는 지나가되 서지 않는 마을'이었던 양원리에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지어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된 양원역은 이 코스의 심장과도 같다. 화려한 개발 대신 순수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은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협곡을 벗어난 기차는 과거 검은 황금으로 빛났던 도시, 태백 철암에 닿는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이곳은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수백 명의 여성이 석탄을 골라내던 선탄장과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는 철암탄광역사촌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구처럼, 치열했던 시절 우리를 뜨겁게 만들었던 이들의 흔적을 아련하게 보여준다.

 


첩첩산중을 빠져나온 영동선의 종착지는 마침내 동해의 드넓은 바다다. 정동진역에 내리면 짠 내 섞인 바닷바람이 여행자를 맞는다. 상업화된 풍경 속에서도 갓 잡은 생선을 통째로 구워내는 소박한 백반집은 동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를 선사한다. 북적이는 인파 속, 서로에게 손 편지를 쓰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이 아날로그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의 빠른 속도는 지나온 길의 느릿한 풍경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산과 협곡, 강과 바다, 그리고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꿰어낸 '하트-라인' 여정은 단순한 기차 여행을 넘어, 잊고 있던 삶의 가치와 낭만을 재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통합은 OK, 돈은 나중에? 정부와 광주·전남의 동상이몽

 40년 넘게 이어져 온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마침내 입법의 문턱을 넘어서며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전남광주 통합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오는 7월 통합특별시 출범을 향한 여정이 본궤도에 올랐다. 지역의 미래를 건 거대 담론이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제도 설계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이번에 행안위를 통과한 특별법은 새롭게 출범할 통합시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행정적 위상을 부여하고, 폭넓은 재정 분권을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달 말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며, 통과 시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초대 통합특별시장을 선출하는 절차가 진행된다.통합의 실질적인 권한을 담보할 특례 조항은 일부 반영, 일부 제외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통합의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던 핵심 특례 31건 중 19건이 법안에 담겼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허가권 확대, 수산자원 개발 권한 이양 등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분명하다. 인공지능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전기료 차등요금제, 개발제한구역(GB) 해제권 등 지역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직결된 핵심 권한 다수가 이번 법안에서 제외됐다. 특히 지역에서 가장 기대했던 '4년간 20조 원' 규모의 구체적인 재정 지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의무화한다'는 선언적 수준에 그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법안의 상임위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핵심 특례가 일부 누락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시·도지사는 "통합은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오는 7월 통합특별시의 역사적 출범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정부는 재정 지원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내년도 예산안 골격이 나오는 6~7월까지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설 연휴 직후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신속히 처리해 통합 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남은 입법 과정과 정부의 후속 조치에 지역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