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뉴욕 씹어먹은 K-칼군무..‘일무’ 베시 어워드 쾌거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빌보드를 점령하고,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홀린 데 이어 이제는 한국의 전통무용이 전 세계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조선 역대 왕들의 영혼을 기리던 정숙한 몸짓이 뉴욕 한복판에서 예술적 폭발을 일으키며 K-컬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서울시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일무'가 무용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미국 베시 어워드에서 최우수 안무가·창작자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무용 역사를 다시 썼다.

 

지난 20일 뉴욕 딕슨 플레이스에서 개최된 제41회 베시 어워드 시상식은 그야말로 한국무용의 독무대였다. 뉴욕 무용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시상식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천재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집결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특히 '일무'가 후보로 오른 최우수 안무가 부문은 12팀의 쟁쟁한 후보가 경합을 벌여 수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적을 깨고 첫 번째 수상자로 '일무'의 정혜진, 김성훈, 김재덕 안무가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현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무대에 오른 정혜진 안무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깜짝 놀랐다며 운을 뗀 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한마음으로 견뎌온 무용수들과 스태프들의 신뢰가 만들어낸 결과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베시 어워드 선정위원회는 '일무'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 의례 무용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매혹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 전통 예술의 핵심인 정중동의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폭발적이고 역동적인 전개가 압권이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는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전통이라는 소재를 가장 현대적이고 힙한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사실 '일무'는 기획 단계부터 파격 그 자체였다. 대중에게 익숙한 부채춤이나 살풀이춤이 아닌,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모티프로 삼았기 때문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실의 제사 의식에 사용되던 음악과 춤으로, 엄격한 규율과 절제미가 특징이다. 제작진은 여기에 궁중무용인 춘앵무를 섞고 현대무용의 자유로운 몸짓을 가미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춤을 탄생시켰다. 한국무용의 대가 정혜진과 현대무용의 젊은 감각을 가진 김성훈, 김재덕의 협업은 서로 다른 장르의 벽을 허물며 단 3개월 만에 완벽한 안무를 뽑아냈다. 그 결과 2022년 초연 당시부터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이듬해 뉴욕 링컨센터 공연은 3회차 전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무용수 49명이 펼치는 압도적인 칼군무다.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일무는 개개인의 개성을 철저히 지우고 전체의 합에 집중한다. 무용수들은 눈썹의 각도와 손끝의 위치까지 하나로 맞추는 고도의 훈련을 거쳤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튀는 순간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금기를 지키기 위해 무용수들은 숨소리조차 하나로 모았다. 이러한 절제된 움직임이 공연 중반을 지나며 활을 쏘는 듯한 강렬한 동작으로 변모할 때 관객들은 숨이 멎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김재덕 안무가는 한국 전통무용 특유의 중용의 미학을 강조하며, 단순히 강하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일무'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적인 완성도를 책임진 정구호 연출의 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답게 그는 전통의 틀을 과감히 깼다. 오방색 중 노란색 대신 주황색을 배치해 무사의 강렬한 이미지를 세련되게 중화시켰고, 차분한 예복에서 시작해 허벅지를 드러내는 파격적인 현대식 의상으로 변화를 주어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정 연출은 전통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K-팝에 익숙한 MZ세대 관객들도 충분히 열광할 수 있도록 동선과 색채의 변화에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그 전략은 뉴욕의 까다로운 평단과 관객들에게도 완벽하게 통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이번 수사가 세종문화회관의 제작 역량이 세계적 기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한국 예술이 세계 담론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베시 어워드 수상은 단순한 상 하나를 넘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동시대 예술로서 한국무용이 보여준 저력은 앞으로의 K-컬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 무대를 홀린 '일무'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의 열정이 있기에, 한국무용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조선의 왕들을 기리던 정중한 몸짓이 이제는 전 세계인의 영혼을 울리는 위대한 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불문율보다 무서운 순위 경쟁..하나은행, KB와 정면 충돌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인 불문율이 농구 코트 위에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이 불문율이 예의와 무례 사이를 지속해서 재단하게 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갈등을 키우는 도구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프로 세계의 본질은 결국 승부이며 그 승부 안에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치열한 전략적 계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WKBL) 1위 하나은행과 2위 KB국민은행의 맞대결은 바로 이 불문율과 프로의 생존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었다.사건의 발단은 경기가 거의 마무리되던 시점인 종료 14초 전에 발생했다. 당시 KB는 하나은행을 상대로 87-75라는 12점 차의 넉넉한 점수로 앞서가고 있었다. 사실상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리바운드 경합 도중 공이 베이스 라인을 넘었고 심판은 하나은행의 공격권을 선언했다. 이때 KB 벤치에서 갑작스럽게 감독 챌린지를 요청하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판정이 뒤집혀 공격권은 KB로 넘어왔고 KB는 남은 시간 동안 공격을 시도했다. 비록 하나은행의 수비에 막혀 슛을 던지지 못한 채 경기가 종료되었지만 이 과정 자체가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경기가 끝난 뒤 하나은행 이상범 감독은 이례적으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상대 팀에 대해 예의가 없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판정을 확인하며 챌린지를 사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상대가 챌린지로 가져온 공격권을 통해 득점을 올려 골 득실을 챙기려 한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넣지도 못할 공격을 시도한 점을 꼬집었다. 현장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농구계에서는 승자의 예우와 불문율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뜨거워졌다. 하지만 KB국민은행 김완수 감독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는 상대에 대한 무례가 아니라 철저하게 팀의 이익을 위한 전술적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하나은행과 KB는 정규리그 우승을 놓고 불과 2경기 차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WKBL 규정상 최종 성적이 동률일 경우 상대 전적을 따지고 그마저도 같으면 득실률 순으로 최종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4위 경쟁 당시 단 1점 차의 골 득실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갈렸던 경험을 언급하며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주어 실점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당연한 책무였다는 논리다.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선 이상범 감독 역시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입장에 선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자프로농구(KBL) DB를 이끌던 2020년 1월 선두 경쟁팀인 SK와의 경기에서였다. 당시 DB는 9점 차로 앞선 종료 직전 두경민의 버저비터 3점슛으로 경기를 마쳤다.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의 슛은 불문율 위반이라며 SK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그때 이 감독은 이전 대결에서 크게 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잔여 경기 일정상 골 득실을 생각해야 했기에 마지막까지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과거에는 전략적 선택을 강조했던 이 감독이 이번에는 예의를 먼저 언급하며 화를 낸 상황은 불문율의 잣대가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보여준다.결국 불문율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적용하는 사람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승리를 확신한 팀이 마지막까지 점수를 짜내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비매너로 비치겠지만 순위 경쟁이 절박한 팀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술이 된다. 특히 이번 시즌처럼 선두권 다툼이 치열한 경우 1점의 득실 차가 시즌 전체의 농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완수 감독의 선택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득실률이라는 명확한 수치가 순위 산정의 기준이 되는 프로 무대에서 감정적인 불문율을 강요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논란이 반복될수록 농구 팬들과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경기 막판 10여 초를 남기고 공격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혹은 챌린지를 써도 되는지를 두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불문율이 스포츠의 낭만을 유지하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순간의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상대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명문화된 규정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 정신이며 팬들이 원하는 정정당당한 승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논란을 종합해볼 때 결국 정답은 없다. 다만 프로 스포츠의 생태계가 갈수록 데이터와 수치 중심으로 정교해지면서 감정적인 불문율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하나은행과 KB의 충돌은 여자농구의 뜨거운 순위 경쟁을 상징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우승을 향한 양 팀의 집념이 코트 위에서 예의라는 가면을 벗고 거칠게 부딪힌 셈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도 중요하지만 룰 안에서 승리를 쟁취하려는 치열함이야말로 유료 관중을 불러 모으는 프로 스포츠의 최대 매력이다.향후 두 팀의 재대결에서는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다음 맞대결은 정규리그 우승의 향방을 가를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코트 위의 불문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재해석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논란 또한 농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불문율이 승부의 열정을 꺾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프로 선수와 감독은 코트 위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매너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팀의 이득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팬들에 대한 기만일 수도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농구계가 불문율에 대한 건강한 담론을 형성하고 더욱 수준 높은 경기 운영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14초를 남기고 던진 챌린지가 결국 리그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될지 혹은 단순한 감정싸움의 잔재로 남을지는 앞으로 남은 시즌의 전개 과정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