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답게 산다는 것" 킹키부츠가 건네는 마법

세상에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얼굴이 존재한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막이 오를 때마다 울려 퍼지는 신사, 숙녀,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분들이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이런, 저런, 그런이라는 형용사 속에 압축된 무수한 다름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이 인사는 킹키부츠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려온 비결이기도 하다. 단순한 공연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이 작품은 최근 일곱 번째 시즌을 시작하며 다시 한번 레전드 반열에 올랐음을 입증하고 있다.

 

킹키부츠는 1980년대 영국 노샘프턴의 신발공장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폐업 위기에 몰린 구두공장 후계자 찰리가 우연히 드랙퀸 롤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여정이다. 남자가 신는 80cm 길이의 화려한 하이힐 부츠를 만든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고 롤라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해방구였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남자가 밀라노 슈즈 페어를 목표로 갈등하고 화해하며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왜 하필 신발이고 부츠여야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작품의 상징성은 더욱 짙어진다. 신발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도전을 의미한다. 여기에 여성성과 섹시함을 상징하는 부츠가 결합하면서 찰리와 롤라라는 접점이 생겨난다. 비록 이 시선의 차이가 폭발적인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을 다시 묶어주는 매개체 역시 킹키부츠다. 찰리와 롤라는 겉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아버지의 기대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아들이라는 공통된 결핍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부조화를 이겨내며 각자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롤라라는 캐릭터는 킹키부츠의 독보적인 매력을 완성한다. 화려한 드레스와 화장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당당함은 관객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킨다. 타인의 편견 가득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나답게 행동해를 외치는 롤라의 긍정 에너지는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에서 기인한다. 관객들은 롤라를 통해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예술적인 완성도 역시 훌륭하다.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쇼적인 요소와 깊이 있는 서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드라마적인 긴장감을 오직 음악에만 의존하지 않는 유려한 연출이 돋보인다. 찰리와 롤라가 밀라노행을 앞두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장면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 없이 오직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력만으로 극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다. 영화적 기법을 무대 위에 구현한 권투 대결 장면 역시 슬로우 모션 연출을 통해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하며 뮤지컬만의 묘미를 극대화한다.

 

 

 

세계적인 팝스타 신디 로퍼가 작업한 넘버들은 그야말로 황금 리스트라 불릴 만하다. 디스코부터 팝, 발라드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곡들은 세련되면서도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강렬한 킬링 파트를 자랑한다. 롤라의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랜드 오브 롤라와 찰리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소울 오브 어 맨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도는 마법을 부린다. 이러한 음악적 성취는 킹키부츠를 반복해서 관람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배우들의 면면 또한 화려하다. 그동안 강홍석, 정성화, 최재림, 박은태 등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롤라를 거쳐 가며 저마다의 색깔을 입혔고 김무열, 이석훈, 김성규 등이 찰리로서 완벽한 호흡을 맞췄다.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이재환과 백형훈 역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실력을 입증한 이재환과 경력의 새로운 정점을 찍고 있는 백형훈의 에너지는 무대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이즈 유 업은 관객과 배우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라는 가사처럼 킹키부츠는 삶에 지친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분 좋은 희망을 건넨다. 관객들의 환호와 떼창이 어우러지는 피날레는 왜 우리가 극장을 찾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다름을 응원하는 이 뜨거운 무대는 오는 3월 29일까지 샤롯데시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갓태어난 아기 숨지게 한 친부, 눈물의 뒷북 반성

생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핏덩이 같은 신생아가 울고 보챈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하게 학대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한 아버지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됐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와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31세 남성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사법부가 얼마나 단호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비극의 시작은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지난해 1월 30일 오전 6시경, 생후 29일에 불과한 아들의 뺨을 때리고 얼굴과 머리 부위를 강하게 움켜잡고 누르는 등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조사 결과 A씨의 학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본 지 겨우 8일에서 9일이 지난 시점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기의 몸을 들어 올려 강하게 흔들고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심지어 숨 쉬기도 힘든 갓난아기의 코와 입을 강하게 때리는 등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학대 행위를 반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사망 당일의 정황은 더욱 충격적이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향해 A씨는 조용히 하라며 너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또다시 학대를 저질렀다. 결국 가냘픈 생명이었던 아기는 외상성 뇌출혈 등의 심각한 상해를 입었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아기가 아버지는커녕 사람이 준 고통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출생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은 피해자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폭행하고 상해를 가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한편, 아동 관련 기관에 10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A씨는 물론 검찰 측도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2심 재판부는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던 피해자가 겪었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학대당한 피해자가 생후 불과 1개월 만에 사망해 더 이상 그 피해를 회복할 수도 없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A씨가 범행 후 보여준 파렴치한 행태가 중형 선고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 A씨는 피해자가 사망한 뒤 유일한 목격자인 배우자에게 사망 경위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하도록 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범행 증거 영상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큰 집안 홈캠을 중고 장터에 팔아버리는 등 인륜을 저버린 은폐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다.다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가 가진 지적장애와 감정 조절 능력 부족 등이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양형에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법리적 오해나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10년을 최종 확정했다.이 사건이 알려지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네티즌들은 사람이 어떻게 그 어린 아기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징역 10년도 너무 가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동 보호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시민은 아기에게 아버지는 온 세상이었을 텐데 그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런 비극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탄식했다.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은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범행 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등의 정황이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비정한 아버지에게 내려진 징역 10년이라는 형량은 차가운 교도소 담장 안에서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참회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