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명 미술관 비상? 동네 미술관의 역대급 전시

요즘 주말마다 대형 미술관의 끝없는 대기 줄에 지친 이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소식이 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해외 유명 작가의 진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른바 동네 미술관이 대형 미술관 못지않은 수준 높은 구성으로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구립 미술관들이 세계적인 거장의 전시를 잇달아 개최하며 문화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복지 현장이자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이 역대 최대인 337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미술 전시 수요가 폭발하는 가운데 이러한 동네 미술관의 반란은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은 단연 구립 노원아트뮤지엄이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연속으로 월드클래스급 전시를 선보이며 노원구를 새로운 미술의 성지로 탈바꿈시켰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노원구는 지난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창시자인 잭슨 폴록의 작품을 포함해 무려 2,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뉴욕의 거장들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6만 3,500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지역 기반 미술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노원아트뮤지엄의 흥행 질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모네 르누아르 반고흐 그리고 세잔 전시를 열어 다시 한번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거장 11인의 원화 21점이 전시되는 이번 행사에는 그 명성만큼이나 귀한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 연작 중에서도 희귀한 세로 구성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의 양귀비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동네 작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곳은 노원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을 통해 공립 미술관 등록 기준에 맞춘 항온항습 전시실과 수장고를 완벽히 갖추고 있으며 전문 인력까지 배치해 해외 유명 미술관으로부터 작품을 대여받을 수 있는 신뢰를 쌓았다.

 

 

 

개성 넘치는 기획으로 특정 분야의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곳도 있다. 사당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조각 전시의 메카로 불린다. 한국 현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의 작품 141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어 언제든 그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현재는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추상 조각가 전국광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조각 예술의 깊이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어우러진 조각 작품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인생샷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특별한 시도도 돋보인다. 강서구립 겸재정선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을 잡고 소장 중인 근현대 수묵채색화를 선보이는 특별전을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 지자체가 국립 기관과 협력해 수준 높은 작품을 주민들에게 직접 배달한 셈이다. 멀리 종로나 과천까지 가지 않아도 거주지 인근에서 국보급 가치를 지닌 현대 미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은 주민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노원아트뮤지엄 전시의 경우 얼리버드 입장권만 4만 3,000여 장이 팔려나갈 정도로 대중의 반응이 뜨겁다. 동네마다 특색 있는 전시 기획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 전시의 상업성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기획이 더해진다면 미술 소비층은 더욱 두터워질 전망이다.

 

동네 미술관의 성장은 단순히 문화 향유의 기회를 넓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근 상권의 활성화는 물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복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모네의 그림을 보고 반고흐의 붓 터치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은 정서 교육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굳이 큰마음 먹고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동네 미술관들이 앞으로 어떤 놀라운 전시로 우리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불문율보다 무서운 순위 경쟁..하나은행, KB와 정면 충돌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인 불문율이 농구 코트 위에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이 불문율이 예의와 무례 사이를 지속해서 재단하게 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갈등을 키우는 도구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프로 세계의 본질은 결국 승부이며 그 승부 안에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치열한 전략적 계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WKBL) 1위 하나은행과 2위 KB국민은행의 맞대결은 바로 이 불문율과 프로의 생존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었다.사건의 발단은 경기가 거의 마무리되던 시점인 종료 14초 전에 발생했다. 당시 KB는 하나은행을 상대로 87-75라는 12점 차의 넉넉한 점수로 앞서가고 있었다. 사실상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리바운드 경합 도중 공이 베이스 라인을 넘었고 심판은 하나은행의 공격권을 선언했다. 이때 KB 벤치에서 갑작스럽게 감독 챌린지를 요청하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판정이 뒤집혀 공격권은 KB로 넘어왔고 KB는 남은 시간 동안 공격을 시도했다. 비록 하나은행의 수비에 막혀 슛을 던지지 못한 채 경기가 종료되었지만 이 과정 자체가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경기가 끝난 뒤 하나은행 이상범 감독은 이례적으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상대 팀에 대해 예의가 없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판정을 확인하며 챌린지를 사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상대가 챌린지로 가져온 공격권을 통해 득점을 올려 골 득실을 챙기려 한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넣지도 못할 공격을 시도한 점을 꼬집었다. 현장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농구계에서는 승자의 예우와 불문율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뜨거워졌다. 하지만 KB국민은행 김완수 감독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는 상대에 대한 무례가 아니라 철저하게 팀의 이익을 위한 전술적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하나은행과 KB는 정규리그 우승을 놓고 불과 2경기 차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WKBL 규정상 최종 성적이 동률일 경우 상대 전적을 따지고 그마저도 같으면 득실률 순으로 최종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4위 경쟁 당시 단 1점 차의 골 득실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갈렸던 경험을 언급하며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주어 실점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당연한 책무였다는 논리다.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선 이상범 감독 역시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입장에 선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자프로농구(KBL) DB를 이끌던 2020년 1월 선두 경쟁팀인 SK와의 경기에서였다. 당시 DB는 9점 차로 앞선 종료 직전 두경민의 버저비터 3점슛으로 경기를 마쳤다.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의 슛은 불문율 위반이라며 SK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그때 이 감독은 이전 대결에서 크게 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잔여 경기 일정상 골 득실을 생각해야 했기에 마지막까지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과거에는 전략적 선택을 강조했던 이 감독이 이번에는 예의를 먼저 언급하며 화를 낸 상황은 불문율의 잣대가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보여준다.결국 불문율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적용하는 사람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승리를 확신한 팀이 마지막까지 점수를 짜내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비매너로 비치겠지만 순위 경쟁이 절박한 팀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술이 된다. 특히 이번 시즌처럼 선두권 다툼이 치열한 경우 1점의 득실 차가 시즌 전체의 농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완수 감독의 선택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득실률이라는 명확한 수치가 순위 산정의 기준이 되는 프로 무대에서 감정적인 불문율을 강요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논란이 반복될수록 농구 팬들과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경기 막판 10여 초를 남기고 공격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혹은 챌린지를 써도 되는지를 두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불문율이 스포츠의 낭만을 유지하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순간의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상대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명문화된 규정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 정신이며 팬들이 원하는 정정당당한 승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논란을 종합해볼 때 결국 정답은 없다. 다만 프로 스포츠의 생태계가 갈수록 데이터와 수치 중심으로 정교해지면서 감정적인 불문율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하나은행과 KB의 충돌은 여자농구의 뜨거운 순위 경쟁을 상징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우승을 향한 양 팀의 집념이 코트 위에서 예의라는 가면을 벗고 거칠게 부딪힌 셈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도 중요하지만 룰 안에서 승리를 쟁취하려는 치열함이야말로 유료 관중을 불러 모으는 프로 스포츠의 최대 매력이다.향후 두 팀의 재대결에서는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다음 맞대결은 정규리그 우승의 향방을 가를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코트 위의 불문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재해석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논란 또한 농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불문율이 승부의 열정을 꺾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프로 선수와 감독은 코트 위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매너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팀의 이득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팬들에 대한 기만일 수도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농구계가 불문율에 대한 건강한 담론을 형성하고 더욱 수준 높은 경기 운영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14초를 남기고 던진 챌린지가 결국 리그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될지 혹은 단순한 감정싸움의 잔재로 남을지는 앞으로 남은 시즌의 전개 과정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