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모아

나이 들수록 입맛이 더 좋아지는 놀라운 이유, 뇌에 있다

 맛을 느끼는 최종 결정권은 혀가 아닌 뇌에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최근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은 맛에 대한 호불호와 섬세한 구별 능력이 선천적인 유전자가 아닌, 후천적인 '반복된 훈련과 기억의 축적'을 통해 재구성되는 뇌 신경망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즉, 뇌가 특정 맛에 대한 꾸준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회로를 바꾸고, 그 맛을 '맛있다'고 인식하도록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는 미식의 능력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삶을 통해 완성되는 후천적 능력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뇌의 '가소성' 원리는 우리가 어릴 적 싫어했던 음식을 나이가 들면서 즐기게 되는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향이나 에스프레소의 쓴맛은 본능적으로 '부패'나 '독'으로 인식되어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그 음식을 섭취한 뒤 따라오는 각성 효과나 포만감 같은 긍정적 '보상'이 반복되면 뇌는 해당 맛을 즐거운 신호로 재분류하여 기억한다. 19세기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이 "오직 지성인만이 먹는 법을 안다"고 말했듯, 현대 뇌과학은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미식가들이 맛을 볼 때 단순한 감정 영역(편도체)뿐만 아니라 인지(전두엽)와 기억(해마)을 관장하는 영역까지 활성화됨을 증명했다. 이는 미식이 과거의 데이터를 대조하고 분석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라는 뜻이다.

 


미식의 진정한 깊이는 기억에서 나온다. 노화로 혀의 감각이 무뎌진 대가들이 여전히 최고의 미식가로 남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혀가 보내오는 신호는 줄어들었을지라도, 뇌 속에 수십 년간 쌓인 방대한 '맛의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한 감각 정보를 보완하고 오히려 맛을 훨씬 더 깊고 풍성하게 해석해내기 때문이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향기가 과거의 기억을 통째로 불러오는 '프루스트 효과'처럼, 맛과 향은 기억과 직결된 가장 강력한 매개체다. 미식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행위를 넘어, 맛을 통해 잊혔던 삶의 순간을 복원하고 정서적 자산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결국 지금 느끼는 맛의 세계가 좁다고 느끼는 것은 혀가 둔해서가 아니라, 뇌가 아직 충분한 '반복된 훈련과 기억의 축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식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대신 즐거운 기억을 함께 심어주면 뇌가 서서히 그 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성인의 뇌 역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미식가는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부터라도 음식의 여운에 집중하고 혀가 보내는 신호를 뇌가 받아 적도록 노력한다면, 평범했던 식사는 위대한 미식의 여정으로 바뀔 수 있다. 미식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다.

 

이혜훈 "韓경제, 알고도 방치한 '회색 코뿔소' 상황"

 이혜훈 신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 상황을 '회색 코뿔소'에 비유하며, 단기적 대응을 넘어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 후보자는 29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로 첫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여러 악재가 겹친 '퍼펙트스톰' 상태에 놓여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를 방관해 온 구조적 위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확보된 재원을 민생 안정과 미래 성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재정 운용의 대전환을 예고했다.이 후보자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지목한 '회색 코뿔소'는 총 다섯 가지다. 심각한 인구 위기,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 날로 극심해지는 양극화, 산업 및 기술의 대격변, 그리고 지방 소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회색 코뿔소'는 거대한 몸집으로 멀리서부터 다가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사람들이 그 위협을 애써 무시하거나 안일하게 대응하다 결국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뜻하는 용어다. 이 후보자는 이들 5대 위기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 '블랙스완'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많은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사회 전체가 사실상 방치해 온 결과물이라고 날카롭게 진단했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제대로 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던 과거의 정책적 실패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이러한 엄중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이 후보자는 기획예산처의 출범 이유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눈앞의 현안에만 매몰되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응으로는 구조적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더 멀리, 더 길게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설되는 기획예산처가 미래 비전에 기반한 '기획'과 국가 재원 배분인 '예산'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 예산을 배분하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이라는 큰 그림 아래에서 재정이 전략적으로 투입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궁극적으로 이 후보자는 국민의 세금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투자가 되고, 그 투자의 과실이 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전략적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기획예산처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영 원칙으로 △더 멀리 길게 보는 기동력 있고 민첩한 조직 △권한은 나누고 참여는 늘리는 열린 조직 △운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신뢰를 얻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대한 질문에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서도 즉답을 피하고 추후 별도의 자리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해, 향후 재정 정책 방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