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모아

'과로사 기준 훌쩍 넘는 주 88시간'…전공의들, 법 개정에도 '분노'

 의정 갈등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 오른 전공의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한 이른바 '전공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정작 법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은 통과 하루 만에 '실효성이 없다'며 즉각적인 재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전공의노동조합(전공의노조)은 국회가 전공의의 연속 수련 시간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의결한 것에 대해 "노동·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의 의지를 존중하고 지지한다"면서도, "아직 많은 부분에서 미흡하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사실상 반쪽짜리 개정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전공의노조가 '미흡하다'고 평가한 가장 큰 이유는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 80시간 근무제'라는 독소 조항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공의는 최장 주 88시간까지 일을 시키도록 법으로 보장된 유일한 직업"이라며, "과로사 판정의 주요 기준이 12주 연속 주 평균 60시간 근로임을 고려하면 이는 터무니없는 생명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법을 위반한 수련병원에 대한 처벌이 고작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1년에 한 번 여러 건을 묶어 처리하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며 실질적인 관리·감독 방안이 부재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노조는 실효성 확보를 위해 5가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신속한 재개정 논의를 촉구했다. 요구사항의 핵심은 ▲노동권 및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수련시간 단축 ▲1인당 적정 환자 수 법제화 ▲법 위반 병원에 대한 누진적 처분 및 형사처벌 조항 도입 등 처벌 강화 ▲'노사 합의기구' 성격의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개편 및 수련병원 관리감독 강화 ▲수련시간 단축에 따른 입원전담의 등 대체 인력 배치 의무화다. 즉, 단순히 근무 시간의 상한선을 일부 낮추는 것을 넘어, 전공의가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내몰리는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노조는 이러한 요구가 단순히 전공의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환자 안전'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내가 빠지면 동료가 더 괴로워지는 구조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지원을 통한 입원전담의 추가 채용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지친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환자 안전과 의료체계 개선이라는 의사 본연의 목적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즉각적인 재개정 논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외환시장 '최후의 보루'…환율 방어선에 국민연금이 등판한 이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으로 구성된 외환당국이 국내 외환시장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과 손을 잡고 6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5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외환 방어막을 구축했다. 양측은 15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맺었던 외환스와프 계약을 2026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번 계약 연장은 단순히 기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금융 환경 속에서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고 시장의 불안 심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정부와 국민연금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외환시장의 '안전핀'을 더욱 단단히 채운 셈이다.이번 외환스와프 계약의 핵심은 외환시장의 '고래'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달러 매입 수요를 시장 밖에서 흡수하는 데 있다. 국민연금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위해 평소에도 막대한 양의 달러를 사들인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지만, 환율이 급등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민연금마저 대규모 달러 매수에 나서면 시장의 쏠림 현상을 부추겨 원화 가치의 추가적인 폭락을 유발할 수 있다. 외환스와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사들이는 대신,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고에서 직접 달러를 빌려 쓰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지 않고도 필요한 외화를 확보할 수 있어, 환율의 급격한 널뛰기를 막는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된다.이러한 거래는 외환당국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도 '윈윈' 전략이다. 국민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인 기금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극대화하는 것이다. 해외 투자 비중이 높은 국민연금에게 환율 변동은 수익률을 갉아먹는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시기에는 해외 자산의 가치가 아무리 올라도 환차손 때문에 전체 수익률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 외환스와프는 국민연금에게 이런 환율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환헤지' 수단을 제공한다. 시장에서 비싼 값에 달러를 사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외화를 조달해 환율 변동의 위험을 피하고, 이를 통해 기금의 수익성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이번 외환스와프 연장 합의는 외환시장의 안정과 국민의 노후 자산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다목적 카드라 할 수 있다.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 없이도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실탄을 확보하고, 국민연금은 환율 변동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이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외부 경제 충격에 대비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긴밀하게 공조하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앞으로 2년간, 650억 달러 규모의 이 든든한 방어선이 대한민국 금융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