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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땐 싸워도 '이 법안'은 통과?…국회, 슬그머니 처리한 민생 법안의 정체

 정치적 대치가 극에 달한 국회지만, 민생경제와 직결된 일부 법안들이 여야 합의로 본회의 문턱을 넘으며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국회는 27일 제429회 정기회 제13차 본회의를 열고, 각종 현안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상정된 법률안 7건과 기타 안건 2건을 모두 가결 처리했다. 이는 극한 정쟁 속에서도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특히 산업 경쟁력 강화와 서민 보호에 초점을 맞춘 법안들이 주를 이뤘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나마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에 처리된 법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 주력 산업과 지역 균형 발전을 겨냥한 법안들이다. 우선,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탄소중립 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이는 친환경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국내 철강업계가 생존하고 도약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함께 해양수산부 및 관련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이전 기관 직원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해양특화지구 지정 근거를 담고 있어, 해수부의 성공적인 부산 안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민과 서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한 법안들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인해 비료, 사료 등 필수 농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농가의 경영비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반영한 '공급망 위험 대응을 위한 필수농자재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처리되었다. 이 법은 농자재뿐만 아니라 농업용 면세유, 농사용 전기 등 에너지 가격 변동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가격 상승 단계별 위기대응지침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보이스피싱, 다단계 사기 등 서민들을 울리는 특정사기범죄의 수익을 철저히 박탈하여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도 통과되어, 앞으로 범죄수익 환수 절차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여러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가 이용자의 돈을 안전하게 별도 관리하도록 의무를 강화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처리되어 온라인 쇼핑 등의 안전성이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온누리상품권의 부정 유통을 막고 전통시장에 대한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도 의결되었다. 아울러, 연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 노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정 소득(초과소득 월액 200만 원 미만) 이하인 경우 연금을 깎지 않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통과되어 많은 노령연금 수급자들이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김학자, 조숙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도 함께 처리되었다.

 

내 정년 65세로 바뀐다…민주당이 제시한 '10년짜리 시나리오'의 정체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급격한 추진보다는 10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혼합연장'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전문가의 제언이 나왔다. 고령화와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년 연장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지만, 청년 고용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연금 수급 연령과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완충 장치와 사회 전반의 체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히 정년 숫자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수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최근 국회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2028년부터 8년간 2년마다 1세씩 연장하는 '단기연장', 2029년부터 12년간 3년마다 1세씩 늘리는 '장기연장', 그리고 2029년부터 10년간 시기별로 연장 주기를 달리하는 '혼합연장'이다. 이 중 민주연구원은 '혼합연장' 방안의 손을 들어주었다. '단기연장'은 속도가 너무 빨라 기업에 부담을 주고 청년 신규 채용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며, 반대로 '장기연장'은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의 소득 공백,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 장기화되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혼합연장'이 속도와 안정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도 결코 넉넉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년 연장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연공서열 중심의 현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고령 인력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생산성을 함께 높이려면, 나이가 들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구조를 깨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4.5일제 도입과 같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정년 연장의 긍정적 효과를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다.더욱 중요한 것은 정년 연장의 혜택이 특정 계층에게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남성·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경력 단절과 재취업의 어려움에 내몰리며 노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향후 10년간 이들의 경력 유지와 직무 전환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종합 지원 대책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정년 연장은 국민연금 개혁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제도 전반의 개혁, 산업 구조 혁신과 맞물려 추진될 때 비로소 노인 빈곤을 완화하고 미래 세대의 부양 부담까지 덜어주는 다목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