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제도 막지 못한 '이 사전', 조선 여성들의 '비밀 노래'…유네스코로 간다

 우리 문자인 한글의 가치와 역사적 깊이를 담은 소중한 문화유산 두 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위대한 여정에 나선다. 국가유산청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는 처절한 노력의 산물인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와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고유 한글 문학 '내방가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등재신청서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며 국내 후보로 최종 선정된 두 기록물은, 이제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2027년 상반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등재 도전은 한글이라는 문자를 넘어, 그 문자를 사용하고 지켜내려 한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노력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는 단순한 언어 자료가 아닌,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항거의 기록이다. 이번에 등재 신청된 기록물은 주시경 선생 등이 주도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사전 '말모이'의 유일한 원고 1책과,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가 1929년부터 1957년까지 편찬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18책을 아우른다. 특히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수많은 국어학자들이 옥고를 치르면서도 목숨처럼 지켜낸 것으로, 우리말을 보존하고 민족의 얼을 지키려 했던 모국어 운동의 상징과도 같다. 이 사전 편찬 노력은 당시 사회의 중심 언어였던 한자에서 한글 중심으로 언어생활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으며, 나아가 문맹 퇴치와 교육 기회 확대를 이끌어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내방가사'는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창작하고 향유했던 독창적인 한글 문학의 정수다. '여성의 공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처럼, 주로 조선 시대 양반가 여성들이 자신들의 공간인 내방에서 창작하고 필사하며 세대를 이어 전승시킨 기록물이다. 이번 신청 대상에는 1794년부터 1960년대까지 약 170년간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창작하고 즐긴 가사 567점이 포함되었다. 시집살이의 고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세상에 대한 풍자 등 닫힌 공간 속 여성들의 희로애락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당대의 생활상과 내면세계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남성 문학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발적으로 창작과 전승의 주체로 활약하며 한글 문학의 저변을 넓혔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여성 기록유산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올해 '제주 4·3 기록물'과 '산림녹화 기록물'까지 총 20건의 빛나는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와 '내방가사'가 더해진다면, 한글 창제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그 문자를 지키고 꽃피운 민중의 저력까지 세계에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민족의 운명을 걸고 언어를 지켜낸 지식인들의 공식적인 기록이며, 다른 하나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삶을 노래한 여성들의 비공식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두 유산은 서로를 보완하며 한글 문화의 다채로움과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2027년,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담긴 두 기록유산이 나란히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아 전 세계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보이스피싱법 악용 '통장 묶기' 사기 주의보

 최근 보이스피싱 제도를 악용해 일반인의 계좌를 동결시킨 뒤 이를 해제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 수법, 일명 ‘통장 묶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금융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기범들은 소액을 무작위로 입금한 후 허위 신고를 통해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선량한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있다.경찰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통장 묶기’ 사기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통신사기피해 환급에 관한 특별법)의 허점을 악용한다. 이 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해당 계좌를 즉시 동결(지급 정지)해야 한다. 사기범들은 이 제도를 악용해 모르는 사람의 계좌에 소액을 입금한 뒤, 자신이 보이스피싱 피해자인 것처럼 허위 신고를 접수해 계좌를 묶어버린다.최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수법에 당했다는 피해 사례가 다수 공유되고 있다. 실제 피해 사례를 보면, 피해자 A씨는 금요일 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00만 원을 입금받았다. 이후 입금자는 3일에 걸쳐 1원씩 소액을 추가로 보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 “당신 계좌를 묶겠다” 등의 협박성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절대 섣불리 입금자에게 연락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연락하는 순간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2차 협박이나 사기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기범들은 동결된 계좌를 풀어주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거나, 다른 종류의 사기 행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또한, 계좌에 들어온 돈을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해당 금액을 사용하면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으므로, 이 돈은 반드시 금융회사를 통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반환해야 한다.일단 계좌가 지급 정지되면 피해자는 복잡하고 긴 소명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통장 지급정지가 걸린 뒤 2개월 이내에 해당 은행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해당 계좌가 사기에 이용된 사실이 없다는 객관적 자료 ▲입금자와 무관하다는 증거 ▲거래 명세 및 협박 메시지 캡처 ▲경찰 신고 명세 등을 제출해 소명해야 한다. 특히 경찰서에서 발급받는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은 은행 심사에 도움이 되는 핵심 자료다.그러나 협박 메시지 등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면 이의 제기가 수용되기 어렵고, 계좌 정상화까지 짧게는 2~3주, 소명 자료가 부족해 2차 이의제기까지 갈 경우 2개월을 넘길 수도 있어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이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악용 사례가 늘어나자 금융감독원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감원은 협박 문자 등이 없더라도 계좌 입출금 명세나 패턴 등을 분석해 사후적으로 신속하게 지급 정지를 해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