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장 승진은 단 1명, 대신 하버드 석학 수혈…이재용의 '기술 삼성' 승부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후 처음으로 단행한 정기 사장단 인사는 '안정 속 기술 혁신'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드러냈다. 전 세계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전환기를 맞아, 승진 인사를 최소화하며 조직에 안정감을 부여하는 한편, 외부 기술 인재를 파격적으로 영입해 '기술 초격차'의 고삐를 다시 죄겠다는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선명하게 읽힌다. 이번 인사는 향후 이어질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의 서막으로,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지에 대한 전략적 밑그림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양대 축인 반도체(DS)와 스마트폰·가전(DX) 부문 수장들의 유임과 역할 강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부회장과 DX 부문을 이끄는 노태문 사장에게 각각 핵심 사업부장인 메모리사업부장과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을 계속 겸직하도록 했다. 이는 극심한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검증된 리더십을 중심으로 조직을 안정시키고,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 1년간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의 부진을 씻고 실적을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재신임을 얻었다.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기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리더십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준 셈이다.

 


안정 기조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변화의 의지는 외부 인재 영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하버드대학교 화학과 교수인 박홍근 사장을 삼성의 미래 기술 연구개발을 책임지는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67년생인 박 사장은 서울대 화학과 수석 입학 및 전체 수석 졸업, 스탠퍼드대 박사 학위 취득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는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을 외치며 기술 확보를 생존의 문제로 여겨 온 이재용 회장의 경영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파격적인 인사다. 선행 기술 연구의 심장부에 외부의 수재를 앉혀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을 추구하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이번 인사에서 유일한 사장 승진자인 윤장현 사장 역시 기술 전문가로서,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라는 중책을 맡았다. 오랜 기간 무선사업부에서 경력을 쌓은 윤 사장의 발탁은 전통적인 주력 사업인 모바일, TV, 가전 등에 AI와 로봇 기술을 본격적으로 접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사장단 인사가 안정에 무게를 두면서 마무리됐지만, '2인자'로 불리던 정현호 부회장이 물러나고 사업지원실이 신설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던 만큼, 향후 이어질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에서 본격적인 세대교체와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삼성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보이스피싱법 악용 '통장 묶기' 사기 주의보

 최근 보이스피싱 제도를 악용해 일반인의 계좌를 동결시킨 뒤 이를 해제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 수법, 일명 ‘통장 묶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금융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기범들은 소액을 무작위로 입금한 후 허위 신고를 통해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선량한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있다.경찰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통장 묶기’ 사기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통신사기피해 환급에 관한 특별법)의 허점을 악용한다. 이 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해당 계좌를 즉시 동결(지급 정지)해야 한다. 사기범들은 이 제도를 악용해 모르는 사람의 계좌에 소액을 입금한 뒤, 자신이 보이스피싱 피해자인 것처럼 허위 신고를 접수해 계좌를 묶어버린다.최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수법에 당했다는 피해 사례가 다수 공유되고 있다. 실제 피해 사례를 보면, 피해자 A씨는 금요일 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00만 원을 입금받았다. 이후 입금자는 3일에 걸쳐 1원씩 소액을 추가로 보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 “당신 계좌를 묶겠다” 등의 협박성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절대 섣불리 입금자에게 연락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연락하는 순간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2차 협박이나 사기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기범들은 동결된 계좌를 풀어주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거나, 다른 종류의 사기 행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또한, 계좌에 들어온 돈을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해당 금액을 사용하면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으므로, 이 돈은 반드시 금융회사를 통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반환해야 한다.일단 계좌가 지급 정지되면 피해자는 복잡하고 긴 소명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통장 지급정지가 걸린 뒤 2개월 이내에 해당 은행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해당 계좌가 사기에 이용된 사실이 없다는 객관적 자료 ▲입금자와 무관하다는 증거 ▲거래 명세 및 협박 메시지 캡처 ▲경찰 신고 명세 등을 제출해 소명해야 한다. 특히 경찰서에서 발급받는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은 은행 심사에 도움이 되는 핵심 자료다.그러나 협박 메시지 등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면 이의 제기가 수용되기 어렵고, 계좌 정상화까지 짧게는 2~3주, 소명 자료가 부족해 2차 이의제기까지 갈 경우 2개월을 넘길 수도 있어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이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악용 사례가 늘어나자 금융감독원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감원은 협박 문자 등이 없더라도 계좌 입출금 명세나 패턴 등을 분석해 사후적으로 신속하게 지급 정지를 해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