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모아

'퍼주기' 논란 잠재운 '신의 한 수'?…민주당이 자평한 한미협상 '역대급 성과'의 실체

 한미 양국이 관세 및 안보 협상의 결과물인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를 전격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며 국회 차원의 신속한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이번 협상 타결이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도 국익을 수호하고 한미동맹을 한 단계 격상시킨 중대한 외교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업적 합리성이 입증된 투자만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하며, 협상 결과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 전체가 이번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양새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협상이 대미 투자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규모 대미 투자가 자칫 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퍼주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박 수석대변인은 "원금 회수가 불투명한 근거 없는 투자 우려를 말끔히 해소했다"고 자평하며, 모든 투자가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기반해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협상 결과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결정이었음을 국민에게 설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 분야 못지않게 안보 분야의 성과 역시 민주당이 내세우는 핵심적인 자랑거리다. 공동 설명자료에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 추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미국 해군 함정의 국내 건조 검토 등 민감하고 중요한 안보 현안들이 포함된 것을 두고 당내는 고무된 분위기다. 정청래 대표는 부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오직 국익 관점에서 뚝심 있게 협상을 잘했다"고 극찬하며, 특히 핵잠 건조 관련 내용이 담긴 점을 거론하며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취약하다고 평가받던 안보 이슈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이 같은 협상 성과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후속 조치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당정은 조만간 '대미투자특별법'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한 뒤, 국민의힘 등 야당과의 협의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이르면 주말부터 관련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여야 지도부를 초청해 협상 결과를 공유하고 초당적인 협력을 구하는 자리를 마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외교·안보 성과를 바탕으로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고, 향후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찬성 87% vs 투표율 16%…'숫자의 함정'에 빠진 민주당, 내분 격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도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당 지도부는 당헌·당규 개정안의 최종 의결 절차인 중앙위원회를 당초 예정됐던 28일에서 내달 5일로 일주일 연기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개정안이 24일 당무위원회를 통과하며 순항하는 듯 보였으나, 회의 내부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자 결국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일부 우려가 있어 보완책을 더 논의하기 위해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밝히며, 당내 이견이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매듭지으려던 지도부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음을 의미한다.이번 갈등의 핵심에는 '명분'과 '절차'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지난 19~20일 진행된 전 당원 투표에서 나온 86.81%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거스를 수 없는 당심'으로 규정하고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투표의 전체 투표율이 16.81%에 불과했다는 점이 반대 측의 주요 공격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전체 유권자 중 극히 일부만 참여한 투표 결과를 가지고 당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투표 결과를 근거로 최고위원회의에서 개정안을 신속히 의결하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고, 이는 결국 당내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추진 방식에 대한 불만은 결국 공개적인 반발로 터져 나왔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원칙에 대한 찬반보다 절차의 정당성과 민주성 확보가 논란의 핵심"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요 제도를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단 며칠 만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는 게 맞느냐"고 따져 물으며, 대통령 순방 중에 굳이 당내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안건을 처리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최고위원은 작심 발언을 쏟아낸 직후 회의장을 떠나며 지도부와의 갈등이 심상치 않은 수준임을 드러냈다. 당무위원회 회의장 밖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등 격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결국 민주당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이는 갈등의 봉합이 아닌 수면 위로의 부상에 가깝다. 당 지도부는 이 기간 동안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보완책을 마련해 설득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이들을 만족시킬 묘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원 주권 강화'라는 개혁의 명분과 '충분한 숙의를 통한 민주적 절차'라는 원칙 사이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혹은 일주일 뒤 또다시 강행 처리를 시도하며 정면충돌을 불사할지, 당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