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여성 앞에서 늘 불편했던 이유…히틀러, '성(性) 발달'에 문제 있었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둘러싼 오랜 미스터리 중 하나였던 그의 기이한 행동과 성적 기피 성향의 원인이 현대 과학의 힘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영국 배스대 밀너진화연구소장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히틀러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가 성적 발달에 필수적인 호르몬 결핍을 유발하는 희귀 유전 질환인 '칼만증후군'을 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충격적인 연구 결과는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한 벙커의 소파에서 미군 대령이 수습한 '피 묻은 천 조각'에서 추출한 DNA를 통해 얻어졌으며, 79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독재자의 생물학적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칼만증후군은 성선 자극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 질환으로, 사춘기가 제대로 오지 않거나 이차성징 발현이 미미하며 후각 상실 등의 증상을 동반할 수 있다. 나치 독일 전문가인 앨릭스 케이 포츠담대 교수는 히틀러가 평생에 걸쳐 여성 앞에서 극도로 불편해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이유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수수께끼였다고 지적하며, 이번 칼만증후군 진단 가능성이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답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이에서 "히틀러의 고환은 하나뿐"이라는 노래로 그의 남성성을 조롱했던 것이 단순한 풍문을 넘어, 그의 비정상적인 신체 발달을 암시하는 정황이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연구진의 DNA 분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의 유전자에는 칼만증후군 외에도 자폐증, 정신분열증,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유발할 수 있는 소인이 상위 1%에 해당할 만큼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그의 극단적이고 광기 어린 행동과 결정들이 단순히 정치적 신념을 넘어 유전적 요인과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오랫동안 히틀러를 따라다녔던 '유대인 혈통설', 즉 그의 할머니가 유대인 고용주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DNA 분석 결과 히틀러의 Y 염색체 데이터가 그의 부계 혈통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 지긋지긋한 소문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유전적 특성들이 히틀러가 자행한 끔찍한 전쟁 범죄와 인종 학살에 대한 변명이나 설명이 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이번 연구는 히틀러의 가장 큰 위선을 폭로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연구를 이끈 투리 킹 교수는 "히틀러의 정책은 우생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며, "만약 히틀러가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볼 수 있었다면, 그가 열등하다고 규정한 수많은 유전적 소인을 가진 자기 자신부터 가스실로 보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꼬집었다. 결국 순수 혈통과 우월한 유전자를 광적으로 부르짖었던 독재자 자신이, 그의 기준에 따르면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할 '결함 있는' 유전자의 집합체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 셈이다.

 

예고된 이별, 그러나 너무나도 아쉬운 마침표…체룬돌로 시대의 비극적 종언

 스티븐 체룬돌로 감독의 시대가 아쉬운 패배와 함께 막을 내렸다. LAFC는 23일 캐나다 밴쿠버 BC 플레이스에서 열린 2025 MLS컵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전에서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나, 끝내 무릎을 꿇으며 플레이오프 여정을 마감했다. 이날 경기는 LAFC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체룬돌로 감독의 고별전이었기에 패배의 아픔은 더욱 짙었다. 이미 지난 4월 가족 문제를 이유로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던 그의 마지막 경기는 그렇게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LAFC는 전반에만 두 골을 내주며 0-2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팀의 패색이 짙던 후반, 해결사로 나선 것은 손흥민이었다. 그는 후반 15분 추격의 불씨를 살리는 만회골을 터뜨린 데 이어, 후반 추가시간에는 극적인 프리킥 동점골까지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의 원맨쇼에 힘입어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지만, LAFC는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고 운명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이날의 패배로 한 시대가 공식적으로 저물었다. 2022년 1월 LAFC의 지휘봉을 잡은 체룬돌로 감독은 부임 첫해부터 MLS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데뷔 시즌에 신인 감독 최다승(21승) 신기록을 세우며 팀에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인 '서포터스 실드'를 안겼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필라델피아 유니언을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의 MLS컵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랐던 그의 마지막이 허무한 패배로 기록된 순간이었다.경기 후 체룬돌로 감독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라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 우리가 더 나은 팀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축구"라며 짧은 소회를 남겼다. 이어서 LAFC와 함께한 빛나는 시간에 대해 "우리가 이룬 것들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운 것들이 많다. 모든 걸 다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하며 선수들과 구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비록 마지막은 눈물이었지만, 그가 LAFC에 남긴 족적은 구단 역사에 영원한 자부심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