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아

받으라고만 하고 책임은 안진다?…'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이 환자 잡는다는 이유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법 개정안이 오히려 응급의료 현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억제할 대책은 전무한 상태에서, 단순히 환자를 강제로 수용하도록 하는 이번 법안이 응급실의 과밀화만 부추기고 의료진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까지 떠넘겨 결국 응급의료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나섰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 수용 여부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의료 행위임에도 이를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정부의 전면적인 정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핵심은 119구급대가 병원에 일일이 전화해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던 절차를 없애는 대신, 응급실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에만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에 미리 알리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또한 각 응급의료기관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실시간 인력 현황과 병상 등 수용 능력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러한 정보 공유 시스템은 과거에도 실효성이 없었으며, 이번 개정안이 사실상 ‘환자 강제 할당’으로 작용해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겉으로 보이는 정보와 실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역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지적하는 진짜 문제는 응급실의 문턱이 아니라,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의 ‘최종치료’ 단계에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현재 응급실의 병목 현상은 119가 병원으로 오는 과정이 아니라, 응급진료 이후 입원이나 수술 등 최종치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응급실에서 당장 환자를 받더라도, 해당 질환을 책임지고 치료할 전문과나 수술실, 입원 병상이 포화 상태라면 환자는 응급실에 기약 없이 발이 묶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법적 책임까지 응급의료진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을 정부가 외면한 채, 단순히 ‘받을 수 있는데 안 받는다’는 식으로 문제를 오인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의료계는 응급실 수용력 강제와 같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응급치료 과정에 명백한 과실이 없다면 최종 치료 결과에 대해 응급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상급병원 응급실 이용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장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119로 이송되는 환자의 절반가량이 경증이라는 통계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종치료를 위한 인프라 확충 없이 응급실의 문만 활짝 열어두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게 현장 의사들의 절박한 외침이다.

 

잘나가던 금리 인하, '집값'과 '환율'에 발목 잡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7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유지해왔던 '금리 인하'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거두어들였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인하 자체를 기정사실로 했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향후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에 따라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이전보다 훨씬 신중하고 긴축적인 입장으로의 선회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이번 금통위의 입장 변화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의 핵심 문구가 수정된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금리 인하를 시작한 이래 줄곧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나가겠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인하 방향성을 분명히 해왔다. 또한 향후 고려 사항으로 '추가 인하 시기와 속도'를 언급하며, 인하 자체는 예정된 수순이고 시점과 폭만 조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결정문에서는 '인하 기조'라는 단어가 '인하 가능성'이라는 유보적인 표현으로 대체되었고, 결정 사항 역시 '시기와 속도'가 아닌 '여부 및 시기'로 변경됐다. 추가 금리 인하의 실행 '여부'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로, 명백한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신호로 해석된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역시 이러한 기류 변화를 뒷받침했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성장률 전망이 상향 조정됐지만 향후 경로에 상·하방 위험요인이 모두 잠재해 있다"고 전제한 뒤, "부동산 시장의 높은 가격 상승 기대, 환율 변동성 확대 등 금융안정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당분간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과 동결을 이어갈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금리 인하 행진의 '일시정지' 또는 '종료'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발언으로 풀이된다.이처럼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톤을 조절한 배경에는 예상보다 견조한 경제 지표와 여전히 불안한 금융 시장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0%, 1.8%로 지난 8월 전망치보다 상향 조정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역시 올해와 내년 모두 2.1%로 높여 잡았다. 경기가 예상보다 선방하고 물가 상승 압력도 여전한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과 집값 불안이라는 금융안정 리스크까지 떠안으면서 서둘러 금리를 추가로 내릴 명분이 줄어들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