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종묘 앞에 142m 빌딩?"…'왕릉뷰' 악몽 되풀이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142m 높이의 초고층 빌딩 건립이 추진되면서 20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과 ‘제2의 왕릉뷰 아파트’ 사태 재현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고 합의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개발 사업을 넘어, 세계유산 보존과 도심 개발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30일,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를 기존 55~71.9m에서 98.7~141.9m로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고시했다.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년 가까이 표류해 온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종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앙각 기준을 확대 적용하고,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을 조성하는 등 도심 기능과 환경의 조화를 꾀했다는 입장이지만, 국가유산청의 생각은 다르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훼손 가능성을 제기하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종묘는 1995년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세계유산법’에 따라, 대규모 개발 사업이 세계유산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세계유산영향평가(HIA)’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네스코 역시 세계유산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영향평가를 권고하고 있어, 국가유산청의 주장은 국제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로부터 180m 떨어져 있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서울시 기준 100m) 밖에 위치하므로 법적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수차례 협의에도 불구하고 국가유산청이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불만도 내비친다. 이러한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는 과거 ‘왕릉뷰 아파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문화재 보호와 개발 논리가 충돌하며 큰 사회적 갈등을 낳았고, 결국 유네스코의 우려 표명과 전문가 실사까지 이어졌다. 종묘 앞 초고층 빌딩 논란이 제2의 왕릉뷰 사태로 번질지, 아니면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찬성 87% vs 투표율 16%…'숫자의 함정'에 빠진 민주당, 내분 격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도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당 지도부는 당헌·당규 개정안의 최종 의결 절차인 중앙위원회를 당초 예정됐던 28일에서 내달 5일로 일주일 연기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개정안이 24일 당무위원회를 통과하며 순항하는 듯 보였으나, 회의 내부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자 결국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일부 우려가 있어 보완책을 더 논의하기 위해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밝히며, 당내 이견이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매듭지으려던 지도부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음을 의미한다.이번 갈등의 핵심에는 '명분'과 '절차'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지난 19~20일 진행된 전 당원 투표에서 나온 86.81%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거스를 수 없는 당심'으로 규정하고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투표의 전체 투표율이 16.81%에 불과했다는 점이 반대 측의 주요 공격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전체 유권자 중 극히 일부만 참여한 투표 결과를 가지고 당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투표 결과를 근거로 최고위원회의에서 개정안을 신속히 의결하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고, 이는 결국 당내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추진 방식에 대한 불만은 결국 공개적인 반발로 터져 나왔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원칙에 대한 찬반보다 절차의 정당성과 민주성 확보가 논란의 핵심"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요 제도를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단 며칠 만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는 게 맞느냐"고 따져 물으며, 대통령 순방 중에 굳이 당내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안건을 처리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최고위원은 작심 발언을 쏟아낸 직후 회의장을 떠나며 지도부와의 갈등이 심상치 않은 수준임을 드러냈다. 당무위원회 회의장 밖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등 격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결국 민주당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이는 갈등의 봉합이 아닌 수면 위로의 부상에 가깝다. 당 지도부는 이 기간 동안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보완책을 마련해 설득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이들을 만족시킬 묘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원 주권 강화'라는 개혁의 명분과 '충분한 숙의를 통한 민주적 절차'라는 원칙 사이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혹은 일주일 뒤 또다시 강행 처리를 시도하며 정면충돌을 불사할지, 당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